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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콘텐츠 산업 왜곡하는 정부의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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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콘텐츠 산업 왜곡하는 정부의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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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온라인 게임, 웹툰, K팝,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산업이라는 점이다. 게임은 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지배한 산업이었다. 2006년쯤 한국 정부가 파견한 필자와 만난 중국 문화부의 한 국장이 회의 중에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한국 게임이 중국 젊은이들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특히 중세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한국의 게임이 역사적 사실로 중국인들에게 인식되는 것을 우려한다."


웹툰은 '망가(만화)의 왕국'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산업이다. 일본 웹툰시장에서 1위 업체는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은 라인 기반의 '라인망가'다. 라인망가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점유율은 57.4%다. 2위인 카카오재팬 픽코마의 14.7%를 합하면 한국의 두 기업은 일본 웹툰시장에서 약 72%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K팝의 위력은 방탄소년단(BTS)의 미국 빌보드 차트 1위 등극으로 알 수 있다. 방탄소년단은 2018년 발매한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와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LOVE YOURSELF 結 Answer)'라는 앨범 두 장으로 '빌보드 200' 1위를 두 차례 차지한 바 있다. BTS의 이런 성과는 영어가 아닌 한글 기반의 노래라는 점에서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세 산업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제조업처럼 정부가 기획하고 육성한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세 산업은 철저하게,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정부가 아닌 민간의 노력에 의해 세계적인 산업으로 성장했다. 만일 반대로 이들 콘텐츠 산업에 대해 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결과는 참담했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이런 소리를 들으며 정부 지원 사업에서 탈락했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뭡니까. 촌스럽게." 라인이나 카카오가 웹툰 플랫폼으로 일본시장에 진출하겠다고 해외 지원 사업을 신청하면 '만화의 본산지인 일본에 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심사위원들의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게임 역시 정부 지원 사업의 도움을 받아 글로벌 성공을 거뒀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창조 산업(creative industry)의 원조 영국에서조차 아직 창조 산업에 대한 정부 정책의 뚜렷한 성과가 있다고 듣지 못하고 있으니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위안을 삼아도 좋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도 우리 정부는 끊임없이 콘텐츠산업에 관여하고 개입하고 싶어 한다. 그 대표적 통제 수단이 정부의 지원 사업이다. 정부는 독점기업이 하청기업에 주듯이 사업을 만들고 예산을 뿌려댄다.


특히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 이후 오히려 무책임한 예산 살포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전문성을 도외시한 대규모 인적 풀에서 기계적으로 추려진 심사위원들은 서로 누구인지 잘 모른다. 한국은 좁은 커뮤니티라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은 얼굴만 봐도 서로의 수준을 안다. 얼굴을 모른다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 왔거나 전문성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사장에는 외부 감시인이 들어와 있고, 녹음이나 심지어 녹화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지원 기업에 대해 토론하거나 의견 교환을 하지 못한다. 그냥 기계적으로 점수를 매길 뿐이다. 그리고 정부 산하 기관 직원들은 결정 과정에 조언하려고 하지 않는다. 심사 과정 중에 괜한 오해라도 있으면 법적 처벌을 받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심사의 결과 그렇고 그런 기업, 무난한 기업이 선정되고 지원받는다. 아이디어가 뛰어난 '양화'일수록 탈락 가능성은 크다.


매년 수조 원의 콘텐츠 관련 연구개발(R&D) 예산, 제작 지원이나 글로벌 지원 예산이 쏟아지지만 이를 통해 경쟁력 있는 온라인 게임이나 웹툰, K팝이 나올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 정부가 자신의 지원과 개입이 콘텐츠라는 창조적 산업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날은 언제일까.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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