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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대륙횡단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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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대륙횡단철도 허진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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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10월2일 저녁.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는 하인 파스파르투와 함께 런던을 떠난다. 80일 안에 세계를 일주할 작정이다. 발단은 소소한 입씨름이었다. 포그는 클럽에서 카드게임을 하다 '세계를 일주하는 데 며칠이나 걸리겠느냐'는 논쟁에 끼어들었다. 포그가 "80일이면 충분하다"고 하자 다른 회원들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논쟁은 2만 파운드가 걸린 내기로 발전했다.


포그는 면도하는 데 쓸 물의 온도를 반드시 화씨 86도에 맞춘다. 이 온도를 맞추지 못한 하인을 해고할 정도로 엄격한 사람이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모험을 주저하지 않는 배짱도 있다. 포그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목표를 이뤄낸다. 처음엔 시한보다 하루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시차로 인한 착오였음이 밝혀진다. 포그는 아슬아슬하게 클럽에 도착해 회원들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쥘 베른이 쓴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흥미진진하다. 출간된 해는 1873년이다. 베른이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지구촌에서는 굵직한 사건이 잇달아 벌어졌다. 1869년 11월17일 수에즈운하가 개통되었고 같은 해 5월10일에는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철도가 완공되었다. 1870년 3월7일에는 인도반도철도가 개통되었다. 베른의 소설에서 포그 일행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인도반도철도와 미국 대륙횡단철도를 이용한다.


대륙횡단철도는 교통을 발전시켜 도시 형성에 기여했다. 상품의 거래와 인구의 이동 등 근현대 사회의 변화를 자극하고 촉진하였다. 그러나 지역 고유의 전통을 파괴하고 환경을 훼손하며 선주민들의 권익을 박탈하거나 침해하는 부작용도 컸다. 원주민의 땅을 철도 공사용으로 무상몰수한 미국 정부의 정책은 생존권 투쟁을 불렀다. 미국 정부는 폭력으로 원주민과의 충돌에 대처했다.


베른의 소설에서는 비유럽 세계에 대한 편견과 왜곡이 곳곳에 보인다. 제국주의 시대 작가의 한계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조성면은 포그 일행의 이동경로를 주목한다. 런던-수에즈-봄베이-캘커타-홍콩-요코하마-샌프란시스코-뉴욕-런던. 그는 2017년 경인일보에 쓴 칼럼에서 "이들의 여행지는 영국의 식민지이거나 그 영향 아래 있는 국가들"이며 "포그의 여정은 자본의 식민지 순례 여행"이라고 짚었다.


대륙횡단철도는 한동안 우리의 시야 밖에 있었다. 남북의 분단은 대한민국을 섬나라로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에서 철도 연결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자 불현듯 유라시아 횡단철도라는 화두가 우리 의식의 전면에 떠올랐다. 한반도를 출발한 열차가 아시아와 유럽을 가로질러 대서양에 이르는 장면이 꿈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1936년에 반도의 청년 마라토너 손기정은 열사흘을 기차로 달려 베를린에 갔다.


지난해 12월26일 KBS 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 철도 연결을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사업이 탄력을 받으면 서울역이 국제역으로 거듭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역은 이미 국제역이었습니다. 70년 전에도요." 프로그램 진행자가 물었다. "한 5~6일이면 (서울역에서 파리나 베를린에)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열흘은 걸릴 겁니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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