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카메라처럼 쉽게 구입 가능
판매 단속 등 규제 마땅치 않아
변형카메라 관리 법률안
작년 8월 발의 이후 국회계류중
전문가도 탐지 어려운 현실
[아시아경제 노태영 기자]"지갑에 쏙 들어가지. 원하는 곳에 올려두면 끝이야. 온라인보다 10% 싸게 해 줄게."
26일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만난 '몰카'(몰래카메라ㆍ법적 명칭은 변형카메라) 판매상 한모씨는 "뭐 찍을지 말해줘야 적당한 몰카를 추천할 수 있다"면서 카드지갑 모양의 몰카를 꺼내보였다. 테이블 위에 지갑 올려놓듯 놔두면 누구든지 당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무작정 계속 녹화하는 게 아니라 동작감지 기능까지 들어있는 제품이라고 한씨는 말했다.
이곳에서 몰카를 사는 건 일반 카메라를 구입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숨어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물건을 비밀창고에서 꺼내오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가게 앞에 '몰래카메라'를 판다고 크게 광고한 곳도 볼 수 있다. 이날 10여개 매장을 찾았다. 카드지갑형 외에도 펜, USB(이동식저장장치), 단추, 안경 등 모양과 성능이 다양했다. 대부분 중국 제품이라 가격대도 높지 않았다. 또 다른 판매상 김모씨는 저렴한 가격에 최상의 영상 품질을 보장하는 제품을 자랑스레 내놨다.
몰카 범죄가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지만 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판매 단속'은 먼 이야기다. 몰카를 일반 카메라와 구분해 규제하거나 따로 관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10년간 몰카 탐지 등 관련 컨설팅을 해 온 이정직 프로정보통신 대표는 "몰카를 쉽게 살 수 있는 환경에서 범죄를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며 "최근에는 그 기능과 형태 등이 너무 다양해지면서 전문가들도 몰카를 탐지해내는 게 매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물론 규제 논의가 없던 건 아니다. 다만 번번이 '과잉 규제'란 논리에 막혔다. 2015년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초소형 카메라 판매자와 소지자 모두 관할 지방경찰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총포ㆍ도검ㆍ화약류 등 단속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또 정부는 2017년 변형 카메라의 수입, 판매업 등록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이후 별다른 후속조치가 없다. 초소형 카메라가 사용되는 의학 기술 등 관련 산업 위축이라는 반대 의견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8월 '변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몰카를 구입할 때 신상정보 등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무분별한 유통을 막자는 취지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16년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조사한 범죄 판례 분석 결과에 따르면 몰카 범죄 재범률은 53.8%다. 몰카 범행을 5차례 이상 저지른 비율도 31.2%에 달했다. 또 몰카 범죄의 처벌 유형은 1심의 경우 벌금형(72.0%)이 압도적으로 많다. 항소심에서도 가장 많은 46%가 벌금형이었다. 벌금 액수는 300만원 이하가 80%에 달했다. 원천적 규제가 어렵다면 사후 처벌이라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기철 변호사는 "특별히 유포까지 나아가거나 하지 않으면 벌금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며 "몰카는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의 양과 질이 엄청나게 확대되는 특징을 가진 만큼, 판사들도 양형을 더 엄격하게 하는 분위기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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