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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의 On Stage]마흔셋에 처음 베토벤 '운명'의 전 악장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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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배우들 호연·탄탄한 시나리오 눈길
베토벤과 조카 카를의 갈등 소재…소극장서 베토벤의 삶 옹골차게 담아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처음으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전 악장을 들었다. 연주 시간이 40분에 가깝다는 사실도 물론 처음 알았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여운 때문이다.


루드윅의 커튼콜은 인상적이다. 베토벤이 슈베르트로부터 지휘봉을 넘겨받은 후 관객에게서 등을 보이며 돌아서고 힘찬 동작으로 지휘를 시작하는 순간, 불이 꺼지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빠바바밤'으로 시작하는 운명의 도입부가 약 10초간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갑자기 시각이 마비된 상황에서 예민해진 청각으로 듣는 운명의 웅장한 도입부는 더욱 압도적이다. 루드윅의 커튼콜은 이처럼 되레 관객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며 마무리된다. 여운이 짙게 남는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로 110분간 베토벤의 운명을 확인한 후여서 더욱 그렇다.


루드윅은 피아노가 삶의 빛이자 어둠이었던 베토벤의 '운명'을 옹골차게 담아낸다.

[박병희의 On Stage]마흔셋에 처음 베토벤 '운명'의 전 악장을 듣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한 장면 [사진=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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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배우 다섯 명 중 세 명이 베토벤을 연기한다는 점은 베토벤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슈베르트가 극의 시작과 끝 부분에서만 역할을 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배우는 네 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베토벤 세 명은 각각 어린 베토벤, 청년 베토벤, 성인 베토벤을 연기한다.


세 베토벤은 무대 위에서 함께 연기를 하며 베토벤의 심리와 고뇌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어린 베토벤이 테너인 아버지로부터 모차르트처럼 피아노를 치라고 학대받는 모습을 연기하면 성인 베토벤이 옆에서 회상하듯 당시 자신이 느낀 생각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나는 사육 당했어. 그러면 피아노를 망치로 깨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피아노가 좋았어."


청년 베토벤은 빈으로 와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다. 성공이 눈앞에 있는듯 했지만 귀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청년 베토벤이 고통스러워 하며 무릎을 꿇으면 뒤에 서 있던 성인 베토벤이 "난 신을 원망했네"라고 외친다.


청년 베토벤은 극의 중반 이후에는 베토벤의 조카 카를로 분해 연기한다. 실제 가정을 갖지 못한 베토벤은 조카인 카를에게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쏟았다. 동생이 일찍 죽자 조카 카를에 대한 양육권을 두고 동생의 아내와 법정 다툼을 벌였다. 베토벤은 소송에서 이겨 조카와 함께 살지만 베토벤은 카를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베토벤은 카를이 음악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카를은 음악에 관심이 없었고 군인이 되기를 원했다. 카를은 베토벤의 괴팍함을 견디지 못 하고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루드윅의 후반부는 베토벤과 카를의 이같은 대립과 충돌을 다룬다. 결국 베토벤과 카를의 관계는 파국을 맞고 죽음을 앞둔 베토벤은 삶에 대한 깊은 회한을 드러낸다.

[박병희의 On Stage]마흔셋에 처음 베토벤 '운명'의 전 악장을 듣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사진=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마리는 다섯 명 배우 중 유일한 여성이자 루드윅 제작진이 만들어낸 매력적인 가상의 인물이다. 마리의 매력이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은 피아니스트 임현정씨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씨는 내달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년 만에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 공연을 한다. 임현정씨는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바흐는 아버지, 베토벤은 애인 같은 느낌"이라며 "베토벤의 삶을 알수록 어떻게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았을까, 그때 내가 베토벤 옆에 있었으면 베토벤의 삶이 좀더 쉬웠을텐데. 무척 힘든 삶을 살았는데 왜 돌봐주는 여인이 없었을까, 측은하고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마리가 루드윅에서 그 역할을 한다.


마리는 밝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자괴감에 빠져있는 베토벤에게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다. 귀머거리 작곡가라며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고 자학하는 베토벤에게 포기하면 뭐가 남느냐고 자신은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한다.


실제 베토벤은 30세 무렵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루드윅에서도 이 장면이 연출되는데 결정적인 순간 마리가 등장해 베토벤의 자살을 막는다. 베토벤은 처음에는 '저돌적인 여자'라며 마리를 문전박대하지만 생을 정리하며 쓴 마지막 편지를 마리에게 남길 정도로 극의 마지막에는 그와 친구가 된다.


루드윅을 제작한 과수원뮤지컬컴퍼니의 허강녕 대표는 "30살 무렵 베토벤이 유서를 썼는데 죽지는 않는다. 그 이후로 베토벤을 대표하는 음악이 막 쏟아졌다. 베토벤의 자살을 막은 뭔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베토벤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마리라는 인물을 통해 베토벤의 자살을 막은 그 상황을 상상력으로 연출했다"고 했다.


마리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 베토벤은 무대 중앙에 놓여있는 피아노에 보자기를 씌운 후 퇴장하는데 피아노는 곧 베토벤이 누운 관을 상징한다. 그리고 마리, 카를 등이 보자기가 덮힌 피아노를 둘러싸고 베토벤을 애도하며 극은 끝난다. 카를이 마지막에 애도하는 장면은 베토벤과 화해의 의미를 담았다.


허 대표는 "카를은 실제로 군대를 제대한 후 베토벤의 묘소를 찾아가 대성통곡 한다. 또 결혼해서 아들의 이름을 루드비히 폰 베토벤으로 짓는다. 그것이 화해의 의미였을 것"이라고 했다.

[박병희의 On Stage]마흔셋에 처음 베토벤 '운명'의 전 악장을 듣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사진=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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