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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증오에 맞선 폴란드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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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증오에 맞선 폴란드의 '침묵'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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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증오에 맞선 폴란드의 '침묵'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증오를 멈춰라(Stop nienawisci)."


자선행사 도중 괴한에게 피습당한 한 진보 정치인의 죽음이 폴란드를 뒤흔들고 있다. 수도 바르샤바는 물론 그단스크, 카토비체 등 주요 도시에서 촛불을 든 시민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들은 증오범죄의 희생자가 된 파벨 아다모비치 그단스크시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침묵시위를 통해 폭력과 분열, 증오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5살 딸과 함께 시위에 참석한 안나 카르보스카는 일간 비보르차에 "만연해있는 증오ㆍ혐오가 어디로 향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켰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은 정치권의 분열 및 대립과 맞닿은 전형적인 증오ㆍ혐오범죄로 평가된다. 아다모비치 시장은 민족주의 성향의 집권 여당인 '법과 정의당(Pis)'에 맞서 성적소수자, 난민 등 소수집단의 권리를 옹호해온 정치인이다. 용의자인 20대 남성은 사건 당일 아다모비치 시장을 수차례 흉기로 찌른 후 마이크를 거머쥐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 모두를 경악케 했다.


특정집단에 증오감을 갖고 테러를 가하는 이른바 증오범죄는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지게 느는 추세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산하 민주제도인권사무소(ODIHR)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폴란드에서 공식 보고된 증오범죄 건수는 886건으로 2015년(263건) 대비 3배 늘었다. 반(反)난민ㆍ반유럽연합(EU)을 노골적으로 외치는 Pis가 2016년 집권한 이후 폴란드는 사회분열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증오범죄는 그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ODIHR는 "공동체에 만연한 편견의 폭력적 발현"이라고 이를 정의했다. "사람들은 분노를 풀 대상을 찾고 있고,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강력한 힘"이라는 독일 나치 정권 당시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말처럼, 특정집단을 향한 혐오와 차별은 늘 우리 옆에 있다.


증오ㆍ혐오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 '혐오사회'의 저자 카롤린 엠케는 "다름을 인정하고 관용하자는 인식만으로는 혐오의 폭발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증오가 표출될 수 있는 인식의 틀을 경계하고 '시선의 체제'에 저항할 것을 강조했다. 침묵시위가 끝난 후 시청 앞에 놓인 양초에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문구가 함께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떠올려 보니 아다모비치 시장이 남긴 마지막 발언도 사랑과 감사였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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