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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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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샨사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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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소설가를 드러낸다. 그래서 소설의 값은 꿈과 같다. 욕망이라는 점에서 프로이트의 과학과 친구가 된다. 프로이트의 임상기록은 초콜릿 빛깔의 서재 속에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펼쳐 놓는다. 그가 뿜어낸 여송연 연기가 조용히 부유하듯 브라운 운동을 하면서. 거칠게 말하자면 유장하면서도 격렬한 배설의 과정 어디쯤에 있는 예술이다.


소설가들은 말이 많은 편이다. 꿀 먹은 벙어리야 왜 없겠는가. 하지만 탁주 집에서 입을 털어내기로 작정하면 소설가 이길 장사가 없다. 소설가의 토로는 고독을 반영한다. 고독은 비밀에서 오고 비밀은 체험에서 온다. 그러니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확신해도 좋다. 지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한 글자 한 획, 말줄임표 하나에 이르기까지 소설가의 언어 아닌 곳이 없다. 가령 샨사(山颯)가 쓴 '천안문'이나 '바둑 두는 여자'를 읽을 때. 우리는 소녀의 붉은 뺨을 에일 듯 스치는 대륙의 겨울바람을 느끼지 않는가. 그 바람, 그 쓰라림은 모두 현실이며 샨사와 우리가 공유하는 체험이다.

샨사는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는 중국인이다. 1972년 오늘 태어났으니 마흔여섯. 여덟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했다. 베이징대학 진학을 앞둔 열일곱 살 때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겪었다. 특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시위대에게 물을 가져다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1990년에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파리 가톨릭 인스티튜트에서 철학을 배웠다. 그는 파리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비극적인 사태로 인한 심리적 내상까지 지닌 나는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듯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프랑스에 귀화한 그는 1997년 프랑스어 소설 '천안문'을 써서 '공쿠르 뒤 프르미에 로망상'을 받았다. 소설에서 톈안먼 사태 때 데모대에 속했던 여대생 아야메가 박해를 피해 달아난다. 마오쩌둥의 어록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인민해방군 장교 자오가 그녀를 쫓는다. 자오는 아야메의 옛날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역사적 사건 속에서 근원적 자유를 향한 인간의 내적 욕망을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샨사의 재능은 경험으로부터 쏟아져 나온다. 2006년 한국에 와서 언론과 인터뷰할 때 "어릴 때 인형을 갖고 놀지 않고 바둑, 장기, 카드 등 전략이 필요한 게임을 했다"고 기억했다. 그가 쓴 소설 '바둑 두는 여자'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바둑은 계산을 비웃고, 상상력을 조롱한다. 구름들의 연금술만큼이나 변화무쌍한 모양 하나 하나가 모두 최초의 의도에 대한 배신인 셈이다. (중략) 바둑은 기만의 게임이다. 오직 하나의 진실, 바로 죽음을 위해 온갖 허상으로 적을 포위해야 한다."(283쪽)


샨사의 문체는 아름답지만 불꽃처럼 뜨겁다. 샨사는 자신을 '불꽃을 건너 날아가는 새'라고도 했다. '이렇게 바쁜 생활 속에서 사랑은 언제 하느냐'고 묻자 자르듯 말했다. 불길한 예언 같았다.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우리 각자의 가장 훌륭한 부분, 서로 만나기로 되어 있는 두 존재의 완전한 융합입니다. 그러나 삶은 그 존재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랑은 짧은 순간들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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