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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래자산으로서의 국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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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래자산으로서의 국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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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른스님을 뵐 일이 있어 지방의 한 사찰을 방문했다. 수년째 공사 중이던 도로가 개통되어 시원하게 뚫려 있었지만 예전 도로에 익숙했던 나는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했다. 내가 사는 고장도 길을 새로 뚫는 공사가 한창이다. 휴가철이나 명절 한 때 잠시 정체를 이룰 뿐인데도 전국 곳곳에서 고속도로 못지않게 넓은 자동차 전용도로를 만드느라 땅을 덮고 산을 뚫고 있다.


미국에서 지낼 때 이해되지 않았던 몇 가지 일 중 하나가 좁은 도로였다. 미국하면 사통팔달 훤히 뚫린 하이웨이를 연상하겠지만 의외로 지방도시 중에는 좁고 낡은 도로가 많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교통체증이 아무리 심해도 길을 확장하지 않았다.

내가 살았던 노스햄턴 다운타운 지역은 독립전쟁 당시에 만들어져서 도로가 무척 좁았다. 출퇴근 시간 상습 정체구역이지만 수년째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뉴욕주와 맨하탄을 연결하는 조지 워싱턴 다리와 링컨 터널은 평소 교통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출퇴근 시간에는 정체가 극심하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버티고 있다. 걸핏하면 멀쩡한 길을 놔두고 산과 들을 뚫어 터널을 내고 새길 내는 우리나라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머지않아 자율주행차량이 상용화될 것이라고 한다. 운전자의 편리를 위해 개발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자율주행차량이 상용화될 경우 현재 운행되는 차량의 10%만으로 차량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 필요할 때 자율주행차량을 불러서 목적지에 갈 수 있으므로 굳이 개인 자가용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와 자원 면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생각해보면, 차량수요 감소에 비례해 도로 수요도 감소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렇지 않아도 텅 빈 지방도로가 더 텅 비게 될 것이다. 재정 낭비도 문제지만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란 점에서도 문제다.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 포장에서 발생하는 복사열, 자연적인 순환의 과정에서 차단되어 사막화되어 가는 토양, 그리고 아스팔트 표면을 따라 바로 강으로 배출되는 빗물 등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진단한대로 소비문화는 지구를 쓰레기로 뒤덮었다. 토지뿐 아니라 바다 생태계까지 오염시키고 해양생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 포장용 플라스틱 때문에 기형이 된 거북이, 위장 안에 가득 찬 쓰레기 때문에 죽은 슴새 등등. 거기에 필요 이상으로 넓은 도로와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도로까지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고 있다. 국토에 내다버리는 쓰레기로도 모자라 국토 자체를 쓰레기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누구나 그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문제는 실천의지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운동이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윤 창출에 급급한 자본의 욕망보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외면이 더 큰 문제이다. 우리들의 도덕적 불감증은 좀처럼 변화하지 않고 있다. 거기에 낙후된 지역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포장된 지역이기주의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실적 위주의 행정체계, 그리고 중장기적 발전에 대한 안목 부재가 국토를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 국토를 미래자산으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과 우리들의 도덕적인 각성이 절박한 시점이다.


명법스님 구미 화엄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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