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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동의합니다/김수목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8초

밤늦은 전철역에서 그 노파를 만난 것은
저의 불찰입니다
종이 상자를 뜯어 엉덩이 밑에 깔고
신문지 쪼가리로 몸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너무 늦은 밤이었고
수은등이 창백하다 못해 파리한 탓도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 속의 전부를 노파의 손에
쥐어 준 것은 더 큰 불찰이었습니다
어디 사면의 방에라도 가서 쉬시라고 했습니다
어느 찜질방이라도 가서 몸을 뉘이시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 다시 밤늦게 귀가한 것도
저의 불찰입니다
더 늦은 밤이었고 행인도 끊겼지만
여전히 그 노파는
얼마 전의 행색과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대책 없이 살고 있는 매일의 내가,
남의 관심을 구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주머니 속의 전부를 내주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내게 모든 것을 주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파의 눈과 마주쳤을 때,
싸늘한 한기가 나를 밀어냈습니다
밤늦은 귀가는 이제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후 한 詩]동의합니다/김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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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다 읽고 나면 뭔가 좀 불편하다. 마지막 연 때문이다. 유난히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밤늦은 귀가"를 "이제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시인을 향해 그러하기에 더욱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변하였을 것이고, 극히 현실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는 저 "싸늘한 한기"를 들어 내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었을 것이다. 이 둘은 극과 극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노파"를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희한하게도 통한다. 어쨌든 그들에게 "노파"는 연민 혹은 냉소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들이 한 일이라곤 기껏해야 "주머니 속의" 동전을 만지작거린 것이 전부였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노파"를 "싸늘한 한기" 속에 버려 둔 채 득의만만하게 따뜻한 집으로 돌아간 것은 실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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