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만만(慢慢)하게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6초

"나 죽기 싫어. 싫단 말여. 살고 싶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던 장면. 언제 어디서든 심장을 강타하는 슬픈 트라우마.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기억한다. 죽음의 공포는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할머니의 외침으로.

일주일 정도 잠을 설쳤던가. 눈을 감으면, 그러니까 죽으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내 삶과 같이 끝나는 걸까. 내가 사라지면 잠시 슬프겠지만 변하는 건 없겠지. 지구는 돌겠지. 잊히겠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겠지. 엄마는 어린 애가 뭘 그런 걸 벌써부터 고민하느냐는 눈치였다. 외로웠다.


한 번 사는 인생, 무상을 느낀 건 이맘때부터다. 애늙은이 소리를 들은 것도 비슷한 무렵 같다. 각박하게 살 이유가 없어졌다. 죽으면 끝인데. 행복하게 즐겁게 좋은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기에도 너무나 짧은 인생. 입버릇처럼 뱉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로 장면을 옮긴다.


"나 만 원만."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을 보러 온 엄마에게 돈 만 원 받기가 미안했다. 벌여 놓은 사업이 잘 안 됐던 때다. 가정 형편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눈치 챈 지 오래다. 며칠 뒤 또 기숙사를 찾은 엄마는 '미안해 하는 네 표정이 너무 가슴 아팠다'면서 쪽지를 남겼다. 목구멍에 걸리는 뜨거운 그것. 물질적인 모든 것에 가치를 두지 않기 시작한 것은 이맘때로 기억한다. 자연스레 소유에 대한 욕구도 사라졌다. 갖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졌다.


아는 사람은 아는 내 삶의 두 번의 터닝 포인트. 오늘 다시금 되뇌는 것은 여전히 각박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다.


장면은 다시 중국 베이징. 가장 마음에 든 것을 꼽으라면 만만디(慢慢的) 문화다. 내가 생각하는 만만디는 느림의 미학이다. 느리다는 것을 속도의 개념으로만 이해해서는 오산이다. 느리지만 신중하고 정확하며 빠른 것보다 오히려 더 빠른 게 중국의 만만디다.


베이징 생활 2년을 뒤로 하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지 꼬박 3주. 귀국의 기쁨을 만끽할 틈도 없이 쳇바퀴 삶이 다시 돈다. 두려운 것은 어느새 적응한 나 자신이다.


산업부 김혜원 기자 kimhye@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