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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모르스/최원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3초

 
 아이가
 현관문을

[오후 한 詩]모르스/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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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밝음
 어둠
 밝음
 어둠


 웅크린 골목
 눅눅한 집들
 가로등 없는 저녁
 아이는 끝없이 열었다 닫았다
 행인의 동공에
 골목길이
 박혔다 빠졌다



■프로이트를 읽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시를 보곤 대번에 '포르트-다(fort-da)' 놀이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시 속의 '아이가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장면은, 그리고 그에 따른 '밝음'과 '어둠'의 교차는 어머니의 부재를 견뎌 내기 위해 프로이트의 손자가 행했던 실패 던지기 놀이를 그대로 빼닮았다. 게다가 제목까지도 '모르스'이지 않은가. 요컨대 이 시는 어떤 결핍의 대체로 금방 환원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을 보라. 아이가 "끝없이 열었다 닫았다" 하는 골목길에 붙박인 "행인의 동공"을 말이다. 어쩌면 이 시는 스치듯 시를 읽고 지나가는 누군가(行人)를 향한 조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살짝 나 자신이 민망해졌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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