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제, 단통법 폐지를 전제
선택약정할인제 근거 사라져
'보편요금제' 도입도 불투명
가계 통신비를 낮추겠다는 취지로 국회에서 법안이 쏟아지고 있는데, 의도와 달리 정부의 기존 통신비 인하 정책을 무효화 할 수 있어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보편요금제 도입 등 통신비 인하안들이 최근 국회에서 나온 단말기완전자급제 법안과 상충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18일과 25일 1주일 차이를 두고 단말기완전자급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유사한 법안을 발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취지는 "자급제를 통해 제조사는 제조사끼리 기기값 인하 경쟁, 이통사는 이통사끼리 요금제 인하 경쟁을 벌이게 해 소비자 혜택을 증진시킨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박 의원에 따르면 자급제 시행에 따른 통신비 절감효과는 연 9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6월 발표한 통신비 절감 대책은 선택약정할인율 인상, 보편요금제 도입, 공공와이파이 확대, 취약계층 요금추가감면 등을 내용으로 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연간 4조7273억원 절감혜택을 기대했다.
그런데 자급제가 현실에 들어오면 정부가 내놓은 통신비인하 정책 일부가 무용지물이 된다. 절감효과가 가장 큰 약정할인율인상과 보편요금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선택약정할인율을 기존 20%에서 25%로 5%포인트 올리면서 "1900만명에게 연간 최대 1조원의 절감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했다.
선택약정할인제도는 공시지원금제도와 연계돼 있는데, 공시지원금제도는 단말기유통구조법(단통법)에 근거한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는 자급제는 단통법 폐지를 전제로 한다. 즉 자급제가 시행되면 단통법이 폐지됨으로써 약정할인율의 존립근거가 사라지는 셈이다. 정부가 '기업 팔목 비틀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강력히 추진했던 선택약정할인율 인상은 법적 근거를 잃게 되는 것이다.
보편요금제는 전기통신사업법과 고시개정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자급제 시행에 따른 법적 문제는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자급제의 도입이 보편요금제의 명분을 사라지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보편요금제 도입은 전적으로 통신비 인하 필요성에 근거한다. 정부는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월 요금제가 평균 1만원 저렴해질 것으로 본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보편요금제만 도입되도 이통사는 적자를 벗어나기 힘들다"며 "선택약정할인이나 공공와이파이 확대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출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가 이통사에게 '자급제와 보편요금제로 인한 매출감소를 모두 감당하라'고 압박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업계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일련의 문제점은 10월말 출범할 '사회적논의기구(가칭)'에서 다루어질 전망이다. 이 기구에는 제조사와 이통사·알뜰폰 업체·판매점·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중장기적 통신비 인하 방안을 모색한다. 자급제 실시·보편요금제 도입 등 상호 충돌하는 부분에 대한 조율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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