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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에티오피아 구르무 담보바, '8월의 전쟁 영웅'…참전 용사에서 배신자로 기구한 운명(종합)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8초

1951년 에티오피아 군대, '6ㆍ25전쟁' 첫 참전


구르무 담보바, 무반동총 일등 사수

부상으로 고국 후송 뒤 재참전…戰功 세워


'강뉴' 부대원들, 강추위·눈보라와 사투

536명 부상, 122명 전사


에티오피아 공산화 뒤 '전쟁 영웅'에서 '배신자'로 전락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1950년 6ㆍ25 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한 유엔(UN)군 21개국 가운데는 에티오피아도 있었다. 유일한 아프리카 군대였다.


황실 근위대로 근무하다가 영국 교관에게 불과 수개월간 군사훈련을 받고 곧바로 전장에 투입된 이들이 대다수였다. 1951년 부산항에 처음 도착한 에티오피아 군대는 '강뉴(적을 궤멸시키는 무적의 부대)'로 불렸다. 하지만 난생 처음 한국에서 마주한 강추위와 눈보라는 이들을 괴롭혔다.


국가보훈처는 에티오피아의 6ㆍ25 참전용사인 구르무 담보바 이등병을 '8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담보바 이병은 6ㆍ25전쟁에 두 차례나 참전한 흔치 않은 강뉴 부대원이었다. 1951년 31세의 나이에 당시 하일레 셀라시 황제의 명을 받아 참전한 그는 전투에서 허벅지와 엉덩이 관통상을 입어 고국으로 후송됐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낙타고지, 요크고지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린 담보바 만큼 최첨단 무반동총을 잘 다루는 군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군인들에게 6·25전쟁의 전장은 녹록치 않은 무대였다. 이들이 참전한 253회 전투의 대다수는 강원도 철원ㆍ화천 등 최전방에서 이뤄졌다. 아프리카와 다른 기후와 날씨는 전쟁 내내 이들을 괴롭혔다. 참전 군인 가운데 536명이 부상하고 122명이 전사했다.


담보바 같은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은 이후 비참한 삶을 살았다. 1974년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된 뒤 '전쟁 영웅'들은 동맹국인 북한을 상대로 싸운 '배신자'로 지목받았다. 지독한 차별이 뒤따랐다.


참전 용사들은 귀국 뒤 수도 아디스아바바 동쪽 예카 지역의 땅을 황제에게 하사받았으나 이곳에 세워진 코리아타운은 빈곤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6ㆍ25전쟁에 참전했던 노병 270여명은 지금도 이곳에서 친척ㆍ후손들과 함께 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민간단체와 함께 수년 전부터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와 가족을 돕는 일을 해왔다. 또 강원도 춘천시 근화동에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을 완공해 참전 군인들의 활약상을 담은 기록물과 물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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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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