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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돈스코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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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상도 정치부 차장] '드미트리 돈스코이호'. 몽고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러시아 영웅의 이름을 딴 이 배가 최근 다시 회자(膾炙)되고 있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 전함에 쫓긴 이 군함은 울릉도 앞바다에 이르러 스스로 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스코이호에는 현재 가치로 150조원에 이르는 보물이 실린 것으로 전해진다. 울릉도에선 지금도 배에서 살아남은 러시아 선원들이 주고 갔다는 동주전자와 금화에 얽힌 얘기가 돌고 있다.

그런데 돈스코이호는 애초 '보물선'이 아니었다. '무적' 발틱함대의 주력 전함으로 1904년 사상 최장의 원정길에 오르며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제정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보낸 천문학적인 군자금은 해전 도중 돈스코이호에 옮겨 실렸다.


돈스코이호는 일본전함 4척을 침몰시키며 항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배수판을 열어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다. 이후 이 배는 세계 최대 러시아 핵잠수함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민족의 자존심을 대변하고 있다.

때 아닌 보물선 타령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복잡한 국제정세의 단면을 엿보기 위해서다. 돈스코이호의 인양은 2000년 옛 동아건설에 의해 추진되다가 중단됐다. 이 회사의 급작스러운 부도 탓이었다. 2003년에는 한국해양연구원이 배의 윤곽을 어느 정도 찾아냈다고 한다.


이때부터 새로운 문제가 도래했다. 막대한 인양 비용은 논외였다. 수중고고학을 포함해 역사학, 인문학, 국제법까지 따져야할 일들이 수두룩했다.


가장 큰 난제는 소유권이었다. 러시아는 민족의 자존심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승전국으로서 권리를 주장했고, 프랑스는 배에 실렸던 2000만 파운드 금화의 소유권을 내세웠다. 이 돈을 빌려간 제정 러시아가 빚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영해에 침몰하고 우리가 인양하더라도 침몰선이 군함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복잡한 문제 탓에 탐사나 인양이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다는 추측까지 돌았다.


잠시 질문 하나. 박근혜 정부에서 급작스럽게 결정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는 어떤가. 우리 국민의 자존심과 안위가 걸린 문제이지만 여기에는 중국의 불안감과 미국의 우려, 북한의 교만이란 또 다른 문제가 얽혀 있다. 북핵에 대한 일본과 러시아의 걱정까지 감안하면 만만찮은 문제였다.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했다. 정치적 이해타산(利害打算)을 떠나 배치 과정에 얽힌 아쉬움은 그래서 남는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고민했다면 우리의 안위를 두고 열강에게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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