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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민의 남산 딸깍발이] 그는 '한국판 루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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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그늘에 가려진 비운의 사상가 조소앙…독립·통일 운동 남북서 동시에 인정받아

[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적인 지주' 루소가 됐을 것이다."


독립운동사와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유명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대한민국이 낳은 어느 사상가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 본명은 '용은(鏞殷)', 호는 '소앙'인 조소앙 선생이다.

한국 근현대사는 역사의 보물창고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드라마가 그 속에 숨겨져 있다. 피와 땀을 아끼지 않으며 이 땅의 내일을 준비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김구 선생처럼 추앙받는 위인으로 각인된 이들도 있지만, 기억의 공간에 안착하지 못한 이들이 훨씬 더 많다. 조소앙 선생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김 전 관장은 역사의 보물창고에 켜켜이 쌓여 있는 먼지를 걷어내고, 사상가 조소앙을 세상에 공개했다.

'조소앙 평전'은 위대한 사상가의 빛나는 삶의 여정을 담고 있다. 분단의 그늘에 따라 봉인된 한국 근현대사의 숨겨진 기록도 담겨 있다.


[류정민의 남산 딸깍발이] 그는 '한국판 루소'다 조소앙 평전 / 김삼웅 지음 / 채륜 /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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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이라는 인물이 낯선 이유는 무관심 때문이다. 강요된 무관심인지도 모른다. 조소앙 선생은 1958년 9월10일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다. 평양 애국열사릉에는 조소앙 선생의 묘비가 있다.


이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러한 상황에 경계심이 들 수도 있지만, 그의 삶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납북된 후 생을 마감한 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편견을 걷어내야 한다. 조소앙 선생은 남과 북에서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을 인정받은 흔치 않은 인물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대한민국 정부는 조소앙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듬해인 1990년 조국통일상을 추서했다.


조소앙 선생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 "조선 건국의 초석을 쌓은 이가 정도전이었다면 대한민국 정부와 정부수립(헌법제정)에 이념과 정책을 제시한 사람은 조소앙 선생이다."


김 전 관장은 조소앙 선생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조소앙 선생은 독립운동의 역사, 임시정부의 발전,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한복판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명문가의 후예로 성균관에서 수학한 조소앙 선생은 관비 유학생으로 뽑혀 신문물을 접했다.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동서양의 근대학문을 두루 터득했다. 조소앙 선생의 이러한 경험은 법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외교 부문에서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토대가 됐다.


그는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 작성을 주도했고, 외교사절로 유럽 각지를 돌면서 임시정부의 존재와 대한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특히 임시정부 외무위원장으로 선임돼 이 땅의 독립을 위한 외교적인 노력에 힘을 쏟았다.


조소앙 선생은 역사를 내다보는 안목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41년 11월28일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조소앙 선생의 최대 업적으로 손꼽힌다.


일제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기 40일 전, 임시정부는 앞으로 있을 미·일 전쟁과 일제의 패망을 예측하며 건국강령의 기초를 닦았다. 김 전 관장은 "세계 식민지 역사상 해방 후 국가건설과 관련해 체계 있는 방략을 갖춘 민족은 사례를 찾기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조소앙 선생의 철학적 토대는 '삼균(三均)주의'다. 그를 삼균사상가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균주의는 개인 간, 민족 간, 국가 간 균등을 말한다.


정치적 균등, 경제적 균등, 교육적 균등의 실현으로 삼균을 이뤄 이상사회를 건설한다는 평등주의 사상이다. 삼균주의는 임시정부의 극심한 좌우대립을 완화하고 하나의 정강·정책을 수립한 토대가 됐다.


조소앙 선생은 광복이 되자 귀국해 현실정치에도 참여했다. 권력을 탐하려는 게 아니라 해방 이후 극심한 좌우 갈등과 내부 분열로 몸살을 앓던 국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승만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조소앙 선생이 천거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승만 대통령과는 결이 다른 삶을 산 조소앙 선생이 국무총리 후보군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소앙 선생이 초대 국무총리가 됐다면 역사의 물줄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도 모른다. 좌우 이념과 무관하게 인정을 받은 조소앙 선생이 특유의 협상력을 발휘했다면 한국전쟁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민심은 조소앙 선생의 능력에 주목했다. 그는 1950년 5월30일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전국 최고 득표를 기록했다. 당시 서울 성북구에 출마한 그는 미 군정 경무부장을 역임한 '정치 거물' 조병옥과의 맞대결에서 대승을 거뒀다.


조소앙 선생은 3만4035표, 조병옥은 1만3498표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의정 활동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제2대 총선거 직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그의 삶은 다시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납북된 조소앙 선생이 전쟁 이후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공산주의를 반대한 그의 철학적 소신을 고려할 때 순탄치 않았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김 전 관장이 조소앙 선생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의 철학적 신념이 오늘의 사회적인 과제를 풀어갈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이곳,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작업은 힘겹기만 하다. 양극화의 그늘은 깊어가고, 청년실업의 고민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념 갈등, 지역 갈등에 더해 세대 갈등으로 이어진 사회 현실은 서로의 '접점'을 찾기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간다. 파편화된 세상에서 나를 넘어 우리를 찾아갈 방법은 없을까. 힘의 논리에 굴복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일어서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것일까.


조소앙 평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조소앙 선생의 삶을 되짚어가며 평전을 준비했지만, 그를 알면 알수록 마음의 부담이 커졌다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20세기 한 시대를 통틀어 한국에서 그이만큼 폭넓은 식견과 경륜을 지닌 인물이 과연 몇 분이나 될까 상도(想到)할 때, 필자의 평전 작업은 거인의 사상과 발자취를 다 담기에는 능력이 역부족이었음을 고백한다."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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