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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조국과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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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군 훈련소에서 조교가 사물함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훈련생에게 팔굽혀펴기 얼차려를 명령했다. 이 훈련생은 명령을 거부하고 “마음대로 하라”며 언성을 높였다.


급기야 훈련생 대표가 훈육대장과 담판을 벌였고 “명예를 중시하는 귀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앞으로 팔굽혀펴기 같은 것은 시키지 않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이후 훈련이 끝날 때까지 얼차려는 없었다.

가족들과의 면회 후, 이번에는 좀 더 큰 사건이 벌어졌다. 가족들에게 받은 술병들이 적발된 것이다. 외박 금지와 벌점 등 징계가 내려졌다. 지은 죄에 비하면 미미한 조치였다. 하지만 훈련생들은 단식 투쟁으로 맞섰다. 실제로는 초코파이 등을 먹으면서 하는 ‘간식투쟁’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징계는 철회됐다.


규율과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에서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한가. 전혀 현실성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검사 출신 법학자 김두식 교수가 ‘헌법의 풍경’이라는 책을 통해 전한 ‘실화’다. 군법무관 임관에 앞선 기초 군사 훈련 중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에서 이제 갓 새내기 법조인들이 자신에게 부여됐다고 믿는 ‘권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그것은 항상 통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행군 도중 일부가 이탈하여 목욕탕에 총을 세워놓고 목욕을 한 후 택시를 타고 집결지로 갔다”는 선배 기수의 일화도 전했다. 부패한 정치 검사들을 다룬 영화 ‘더킹’이 떠오른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순간부터 이미 철폐된 신분제로 회귀하는 이들이 많은가보다. ‘겉으론 아닌지 몰라도, 이 세상의 내막은 여전히 신분제이고 나는 그 정점에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검찰개혁이 꼽혔다. 원칙과 상식이 바로 서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검찰이 오히려 그런 사회의 적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모순이다.


2014년 여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쌍용자동차 해직 노동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대화를 나눴지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 이미지는 태도다. '외모 패권'이라는 농담의 당사자이면서 "다 가졌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의 태도는 매우 겸손했다. 겉으로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오랜 시간 뿌리 내린 듯한 겸손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겸손하지 않아 보이는 조직을 밑바닥부터 뒤흔들어 새로운 조직으로 변모시켜야할 중책을 맡았다. 왠만한 강단으로는 돌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때로 피흘리는 싸움도 불가피할 것이다. 그럼에도 겸손이 오만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택시 타고 행군하면 안 된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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