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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묵화(墨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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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묵화(墨畵)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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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일 때, 문학잡지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편집실은 잡지를 만드는 곳일 뿐 아니라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도 했다. 인사동 골목에 문학잡지와 일반잡지 편집실이 몇 곳 있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시인ㆍ소설가들의 작품을 교정보면서 드나드는 문사들을 훔쳐보곤 했다. 김동리, 조병화, 홍윤숙 선생을 뵙고 가슴이 뭉클했다. 천상병 선생이 자주 들렀는데, 주스든 뭐든 드리면 무조건 '원샷'을 했다.


문인들이 모이면 신명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 원로 시인들이 주고받은 대화가 생각난다. 주제는 김경린 선생의 시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이었다.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태양이/직각으로 떨어지는/서울의 거리는/플라타너스가 하도 푸르러서/나의 심장마저 염색될까 두려운데//외로운/나의 투영(投影)을 깔고/질주하는 트럭은/과연 나에게 무엇을 가져왔나(후략)'


어르신 시인 한 분이 일갈했다. "망할 자식! 그럼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지, 평행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냐?" 이때 나는 불현듯 '대각선'을 떠올렸다. 좋아하는 단어. 무언가 가로지르는 느낌, 대륙을 떠올리게 해서 좋았다.

원로 문인들은 서로 별명으로 부르기를 좋아했다. 대부분 짓궂게 부르는 말이어서 옮겨 담기는 거북하다. 하지만 내가 듣자마자 누구인지 알고, 말씀이 오갈 때마다 귀를 쫑긋 세워 듣곤 하던 별명은 말할 수 있다. '도깝이'. 곧 시인 김종삼 선생이다. 대학에서 시를 공부한 나는 한동안 그의 시를 좋아해서 여러 편 외웠다. 사실 김종삼, 김영태와 같은 분들의 시는 흉내를 내기도 어렵고 함부로 썼다가는 형편없다고 흉을 보이기 십상이다.


장석주는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이라는 책에서 196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가로 김종삼 선생을 꼽는다. 그는 김종삼 선생의 시 세계를 "전후 한국 시의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른 김춘수의 해탈의 시학과 김수영의 풍자의 시학 사이에 있다. 그의 시는 내용 면에서는 해탈의 시학에 접근해 있으면서도 형식면에서는 이를 배반한다"고 썼다.


문인들의 입담은 어찌나 센지 당해내기가 어렵다. 김종삼 선생은 1963년 동아방송에 입사해 1976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음향효과를 맡았다. 방송국을 통틀어도 그만큼 고전음악에 해박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내 대학 선배이기도 한 문학평론가 한 분이 말했다.


"도깝이가 클래식에 얼마나 귀신이었냐 하면... 음반을 딱 잡잖아? 그 소리골을 손끝으로 감지해서 교향곡이라면 교향곡의 몇 악장 어느 부분을 지나가는지 맞췄다니까?"


나도 클래식을 좋아하므로 그 선배가 뭘 말하려는지 알았다. 그러나 과장이 섞였다고 본다. 그 무렵 편집실에 김종삼 선생이 썼다는 원고 조각이 굴러다녔으나 이내 사라졌다. 누가 가져갔는지 모른다. 내가 집어넣을 걸 그랬다. 김종삼 선생은 절편(節篇)을 수없이 남겼다. 그러나 몸을 더듬어가며 써가는 지금 '목'을 지나가고 있으니 그의 시에서는 이 한 편을 골라잡을 수밖에 없다. '묵화(墨畵)'.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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