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문제원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수백억원 규모의 뇌물 혐의 첫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공소사실을 파고들며 치열한 공방을 예고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영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뇌물공여ㆍ재산 국외도피 및 은닉ㆍ횡령ㆍ국회위증 등 혐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특검의 공소사실 모두에 대해 부인한다"면서 "특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앞으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공판준비기일은 본격적인 변론에 앞서 검사 측의 공소사실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피고인의 입장을 확인한 뒤 앞으로 다툴 쟁점 등을 정리하는 절차다.
변호인은 아울러 특검의 공소장이 '공소장 일본주의'에 어긋나 법리상 하자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공소를 제기할 때 법관이 피고인에 대한 예단을 갖게 할 수 있는 자료 등을 공소장에 첨부하지 못하게 하는 원칙이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 등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이 형사재판을 받은 사실 등을 특검이 공소장에 기재했는데, 이는 마치 오래전부터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의 승계구조를 마련해온 것처럼 법관의 예단을 형성하려는 목적이라는 게 이 부회장 측의 주장이다.
변호인은 또한 "2015년 7월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조속히 안정되길 바라고 법령상 정부가 도와줄 부분은 제한적이지만 현 정부 임기 내에 경영권 문제가 해결되길 희망한다', '메르스 사태가 삼성병원이 거듭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정유라를 잘 지원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지원해달라'고 했다고 큰따옴표로 (표시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만이 아는 내용일텐데 박 대통령 조사를 한 번도 하지 않은 특검이 이런 대화내용을 어떤 근거로 '직접인용'해 공소장에 기재했는지가 의문이라는 게 변호인의 설명이다.
변호인은 또한 공소장에 수사 과정에서 입수된 내부 문건이나 문자메시지가 증거조사 없이 직접 현출된 점 등을 언급하며 "이 부회장의 방어권을 침해한 것으로 용인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특히 특검이 공소장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대주주 일가를 대변하고 전체 투자 업무를 조율하는' 등의 표현으로 묘사했다면서 "미래전략실이 범죄집단인 것처럼 표현된 것은 매우 심각하다"고 밝혔다.
법정에 출석한 양재식 특검보는 공소장에 대한 이 부회장 측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다음 기일에 입장을 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경영권 승계와 연결된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등에 대한 정권의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박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최씨에게 전달했거나 전달하기로 약속한 금액이 총 433억2800만원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최씨가 지배하는 독일 현지 페이퍼컴퍼니 코어스포츠에 213억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77억9735만원을 지급했다. 또한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220억2800만원을 공여했다.
이 외에도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 과정에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 재산을 국외로 빼내 은닉한 혐의, 이번 사태에 대한 국회의 청문회에서 위증한 혐의를 받는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등 4명도 이 부회장과 공모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 5명은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다. 다음 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이날 법정에서는 재판을 방청하던 한 여성이 이 부회장 측을 향해 "제가 물어볼 것이 있다, 제가 물어보겠다"고 소리치다가 재판장의 명령으로 퇴정조치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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