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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두 아버지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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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두 아버지의 등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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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요."
"아, 예. 아이가 또 아픕니까?"
저녁 잘 먹고 잠들었는데 갑자기 열이 치솟곤 했다. 아버지 나이 마흔 둘, 어머니 나이 서른여섯에 낳은 외아들이었다. 나는 늦게 낳은 아이라서 허약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버지는 불덩어리를 업고 밤길을 걸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큰길이 시작되는 곳에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이 있었다. 성이 '전'씨였다. 그 아저씨가 손을 쓰면 이내 열이 내렸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등을, 거기서 풍기는 체취를 느꼈다. 약간 비릿하면서 축축한 남성의 체취. 한밤인데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다. 가끔 경찰을 만났다. 그들은 아버지를 잘 알았다. 어찌 모르겠는가. 키가 190㎝를 훌쩍 넘는 사나이가 한밤에 아이를 업고 밤길을 걸은 것이다. 1970년대에는 그렇게 키가 큰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의 부계는 대대로 체격이 컸다고 한다. 아버지의 손아래 동생이 가장 작다고 했다. 그분도 180㎝는 됐다.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자주 "이 아이가 얼굴은 나를 많이 닮았지만 외탁해서 왜소하다"고 하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등은 참으로 높은 곳이었다. 그러니 내 유년의 밤하늘, 그 별빛에 조금 더 가까웠으리.

아버지는 건설업을 했다. 서울의 신설동에 사무실이 있었다. 건설경기가 좋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일과는 별개로 당신 손으로 집짓기를 좋아했다. 설계를 하고 기술자를 고용해 시공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용해 재미있는 건물을 많이 지었다. 모든 방을 계단으로 연결한 3층 주택, 난방을 공급하는 건물을 따로 둔 (당시는 온돌이 일반적이었다) 콘크리트 양옥. 아버지가 집을 지을 때는 기술자를 따로 구해 썼다. 몰타르를 비벼 벽을 마감하는 일을 하는 분이 있었는데 성이 '변'씨였다. 전라남도에서 왔다는 그에게는 연년생 아들이 셋 있었다. 모두 수재였다. 시멘트벽을 발라 아들 셋을 먹이고 학교 보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변 씨는 자주 아버지에게 돈을 빌렸다. 목돈을 빌려 잔돈으로 갚았지만 틀림은 없었다.


변 씨가 돈을 다 갚은 날 아버지는 반드시 선물을 했다. 고기, 설탕 아니면 카스텔라 같은 간식. 어느 날, 변 씨가 밤늦게 찾아와 돈 봉투를 내놓았다. 어머니가 저녁상을 냈다. 변 씨가 돌아갈 때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창고 문을 열라는 것이다. 쌀가마니를 쌓아 둔 곳이다. 쌀 한 가마니는 80㎏. 변씨는 160㎝나 될까 싶은 단구에 깡마른 사람이었다. 나는 어디서 리어카를 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변 씨는 아무 말 없이 창고에 들어가 가마니를 업고 나왔다. 그리고는 마당에 서서 한참 동안 인사를 한 다음 대문을 나갔다. 골목을 걸어 큰길 쪽으로 사라졌다. 걸음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변 씨의 뒷모습을 기억했다. 그의 괴력이 어디서 나왔을지 한참 뒤에야 짐작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내가 아버지가 된 다음이다. 그렇다, 오롯이 '아버지의 등'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세상의 자식들은 어머니의 젖을 물고 목숨을 부지한다. 그 등에 오줌을 싸며 자란다. 그러나 아버지의 등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 아버지의 등이 들어올 때 아버지는 이미 늙고 무력해졌다. 그들 자신의 등마저 굽어갈 때다. 아버지의 등에는 파토스(pathos)가 있다.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아시아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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