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두 아버지의 등

시계아이콘01분 32초 소요

[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두 아버지의 등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AD

"나요."
"아, 예. 아이가 또 아픕니까?"
저녁 잘 먹고 잠들었는데 갑자기 열이 치솟곤 했다. 아버지 나이 마흔 둘, 어머니 나이 서른여섯에 낳은 외아들이었다. 나는 늦게 낳은 아이라서 허약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버지는 불덩어리를 업고 밤길을 걸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큰길이 시작되는 곳에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이 있었다. 성이 '전'씨였다. 그 아저씨가 손을 쓰면 이내 열이 내렸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등을, 거기서 풍기는 체취를 느꼈다. 약간 비릿하면서 축축한 남성의 체취. 한밤인데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다. 가끔 경찰을 만났다. 그들은 아버지를 잘 알았다. 어찌 모르겠는가. 키가 190㎝를 훌쩍 넘는 사나이가 한밤에 아이를 업고 밤길을 걸은 것이다. 1970년대에는 그렇게 키가 큰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의 부계는 대대로 체격이 컸다고 한다. 아버지의 손아래 동생이 가장 작다고 했다. 그분도 180㎝는 됐다.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자주 "이 아이가 얼굴은 나를 많이 닮았지만 외탁해서 왜소하다"고 하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등은 참으로 높은 곳이었다. 그러니 내 유년의 밤하늘, 그 별빛에 조금 더 가까웠으리.

아버지는 건설업을 했다. 서울의 신설동에 사무실이 있었다. 건설경기가 좋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일과는 별개로 당신 손으로 집짓기를 좋아했다. 설계를 하고 기술자를 고용해 시공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용해 재미있는 건물을 많이 지었다. 모든 방을 계단으로 연결한 3층 주택, 난방을 공급하는 건물을 따로 둔 (당시는 온돌이 일반적이었다) 콘크리트 양옥. 아버지가 집을 지을 때는 기술자를 따로 구해 썼다. 몰타르를 비벼 벽을 마감하는 일을 하는 분이 있었는데 성이 '변'씨였다. 전라남도에서 왔다는 그에게는 연년생 아들이 셋 있었다. 모두 수재였다. 시멘트벽을 발라 아들 셋을 먹이고 학교 보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변 씨는 자주 아버지에게 돈을 빌렸다. 목돈을 빌려 잔돈으로 갚았지만 틀림은 없었다.


변 씨가 돈을 다 갚은 날 아버지는 반드시 선물을 했다. 고기, 설탕 아니면 카스텔라 같은 간식. 어느 날, 변 씨가 밤늦게 찾아와 돈 봉투를 내놓았다. 어머니가 저녁상을 냈다. 변 씨가 돌아갈 때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창고 문을 열라는 것이다. 쌀가마니를 쌓아 둔 곳이다. 쌀 한 가마니는 80㎏. 변씨는 160㎝나 될까 싶은 단구에 깡마른 사람이었다. 나는 어디서 리어카를 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변 씨는 아무 말 없이 창고에 들어가 가마니를 업고 나왔다. 그리고는 마당에 서서 한참 동안 인사를 한 다음 대문을 나갔다. 골목을 걸어 큰길 쪽으로 사라졌다. 걸음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변 씨의 뒷모습을 기억했다. 그의 괴력이 어디서 나왔을지 한참 뒤에야 짐작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내가 아버지가 된 다음이다. 그렇다, 오롯이 '아버지의 등'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세상의 자식들은 어머니의 젖을 물고 목숨을 부지한다. 그 등에 오줌을 싸며 자란다. 그러나 아버지의 등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 아버지의 등이 들어올 때 아버지는 이미 늙고 무력해졌다. 그들 자신의 등마저 굽어갈 때다. 아버지의 등에는 파토스(pathos)가 있다.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아시아경제 ]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