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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을 읽다]빙하를 씻는 차가운 사막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분 1초

내륙으로 가는 기초 다지는 장보고 과학기지

[남극을 읽다]빙하를 씻는 차가운 사막 ▲황제펭귄이 새끼를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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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과학기지(남극)=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아시아경제는 오는 18일까지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를 현장 취재한다. 지난해 아라온 호에 탑승해 현장 취재한 [북극을 읽다]에 이어 [남극을 읽다]를 연재한다. 장보고 과학기지 연구원들의 활동과 남극의 변화무쌍한 현장을 실시간으로 전한다. 남극은 인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연구기지가 들어서 남극에 대한 연구가 무르익고 있다. 기후변화 이슈가 불거지는 가운데 남극을 통해 아주 오래 전 지구역사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남극을 읽다]를 통해 남극의 현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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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새벽 5시(이하 현지시간). 남극으로 가는 날이 밝았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은 분주했다. 장보고 과학기지(이하 장보고) 4차 월동대원과 이탈리아 하계팀이 남극행 수송기 '사페어(Safair)'에 타기 시작됐다.

두꺼운 극지 옷으로 갈아입은 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묻어났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기내는 굉음으로 가득했다. 탑승 전 '귀마개'를 하나씩 나눠줬는데 그 이유를 알만했다. 비행기 안도 삭막했다. 내부 전선들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6시간30분 비행 끝에 오후 12시30분 장보고 과학기지 근처에 착륙했다. 착륙장은 2m50㎝ 정도의 두께로 얼어붙은 얼음 위. 수송기는 미끄러지듯 얼음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현재 남극에는 상설과학기지 40개, 하계과학기지 42개가 존재한다. 전 세계 29개 국가가 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2014년 완공된 장보고는 남위 74도에 있다. 장보고 8㎞ 근처에는 이탈리아, 독일 기지가 있다.

◆"Welcome to Antarctica!"=비행기에서 내리자 빙하를 씻은 차디찬 바람이 이마에 얹혔다. 하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온통 하얗다. 지난해 11월부터 1년 동안 장보고를 지켜온 3차 월동대 한승우 대장이 마중을 나왔다. 산악인 엄홍길 씨도 보였다.


엄홍길 씨는 14일 동안 장보고에 머물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로 이날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 대장은 "'차가운 사막(Cold Desert)'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장보고는 건조하기로 유명해 '차가운 사막'으로 부른다. 춥지는 않았다. 영하 1.3도의 기온이었다. 하계시즌에 돌입하면서 온도가 오르고 있었다.


착륙장에서 장보고까지 약 20분 정도 설상차를 타고 이동했다. 설상차 안으로 바람이 들어오자 온도는 낮아졌다. 장보고는 남극 내륙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한다. '극야(약 90일)'와 '백야(약 100일)'가 교차하는 곳이다.


[남극을 읽다]빙하를 씻는 차가운 사막 ▲K-루트 답사에 나선 대원들


◆"K-루트를 달리다"=하룻밤을 지낸 뒤 K-루트사업단원들과 답사에 나섰다. 9일 오전 10시. 기지를 출발해 브라우닝 산 밑에 있는 K-루트 출발점까지 이동했다. 단원들은 설상차와 스키두(Ski-doo)를 이용했다. 설상차가 앞에서 길을 터주면 스키두가 뒤따른다. 스키두는 앞에는 스키를, 뒤에는 고무궤도를 장착한 남극용 이동수단이다.


스키두에 올라타 출발하는 순간 거친 바람이 피부 속으로 파고들었다. '남극 바람 맛'을 제대로 맛봤다. 체감온도는 영하 15도 급강하했다. 남극은 바람이 불면 수온주가 곤두박질친다. 브라우닝 산 뒤편으로 약 7㎞까지 진출하자 끝없는 설원이 펼쳐졌다. 하늘은 새파랗게 빛났다. 남극은 '파란색과 하얀색만이 존재하는 곳'이란 말이 실감났다. 중간 지점에서 대원들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따뜻한 커피를 나눠 마셨다. 설원에서 먹는 그 맛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 같았다.


[남극을 읽다]빙하를 씻는 차가운 사막 ▲이미정 연구팀(오른쪽)은 남극 화산을 연구하고 있다.


◆"헬기타고 화산으로 이동"=10일은 헬리콥터를 타고 리트만 화산으로 향했다. 리트만 화산까지는 약 120㎞. 헬기로 한 시간정도 거리이다. 상공에서 보는 남극은 눈부셨다. 순백의 세상이 햇빛까지 반사하면서 생생하면서 날카로운 빛을 뿜어냈다. 선글라스를 꼈는데도 눈부셨다.


헬기는 리트만 화산 인근 가스가 분출되는 곳에 착륙하기로 했다. 날씨가 허락지 않아 실패했다. 헬기 안에서 가스가 스멀스멀 나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정 극지연구소 화산연구팀은 헬기를 돌려 장보고에서 가까운 멜버른 화산으로 이동했다. 헬기는 가는 도중 세 번 착륙하고 이룩하기를 반복했다.


헬기에서 내리자 거센 바람이 강타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연구팀은 망치를 이용해 돌을 깨면서 샘플을 모았다. 이 박사는 "수집한 암석은 주성분과 미량 원소 분석 등을 통해 화산암의 종류를 알 수 있다"며 "주성분을 분석하면 어떤 지구 환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극을 읽다]빙하를 씻는 차가운 사막 ▲빙설의 아름다움 앞에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빙하의 혀', 빙설을 만나다"=11일에는 3차 한승우 월동대장과 함께 빙설(氷舌, Ice Tongue) 지역을 찾았다. 빙하가 바다로 쓸려 내려오면서 혓바닥처럼 바다에 툭 튀어나와 있는 곳이다. 순백이 파랑을 먹었다. 천연의 색감으로 우리를 반겼다. 꾸미지도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 푸른색이 반사되면서 묘한 느낌이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자연이 이처럼 아름다운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어떤 위대한 예술가도 흉내 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바람에 깎이고 스스로 무너지면서 온갖 모양새를 갖췄다. 가장 높은 곳의 빙설은 약 50m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 한 대장은 "12월에 온도가 영상까지 오르는데 조금씩 녹기 시작한다"며 "월동대원들에게 위로가 되는 자연 경관"이라고 설명했다.


[남극을 읽다]빙하를 씻는 차가운 사막 ▲헬기를 타고 내려다 본 남극


◆"남극의 보물, 운석"=12일 오전에는 운석 지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최변각 서울대 지구과학교육학과 교수 등을 비롯해 12명의 연구팀들은 헬리콥터 3대에 나눠 타고 장보고에서 200㎞ 떨어진 엘리펀트 모레인 지역으로 이륙했다. 남극의 보물 '운석'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헬기는 약 30분 동안 부드럽게 날았다. 높은 산을 넘을 때는 바람이 센 지 좌우로 흔들리고 아래위로 요동쳤다. 저 앞에서 낮은 구름이 짙게 깔려 다가오고 있었다. 뉴질랜드 헬기 조종사는 "낮은 구름 때문에 비행이 어렵다. 기지로 돌아간다"며 다급하게 전했다. 헬기는 방향을 180도로 바꿔 기지로 향했다. 이날 운석 지역으로 이동은 아쉽게도 불발됐다.


올해 운석연구팀은 약 240개의 운석을 찾았다. 작은 것은 10g에서 큰 것은 1.8㎏에 달했다. 최 교수는 "운석을 수집해 현미경 분석 등을 통해 운석의 성질을 규명한다"며 "이를 세계 운석학회에 보고하면 전 세계 모든 연구자들이 연구 기초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보고는 10월말~2월 중순까지 하계 연구가 가능하다. 가장 바쁜 시즌이다. 운석, 화산, 펭귄, 지질 등의 다양한 연구가 이뤄진다. 3월~9월까지는 동계 시즌이다. 90일 동안 깜깜한 극야도 찾아온다. 동계에는 지구물리, 우주과학, 대기과학 등의 관찰 데이터만 수집한다.


지난해 장보고의 최저 기온은 영하 34도, 최고풍속은 초속 40m를 기록했다. 극한의 추위와 바람을 견뎌야 하는 장보고는 오늘도 태극기를 휘날리며 남극을 지키고 있다.


[남극을 읽다]빙하를 씻는 차가운 사막 ▲황제펭귄과 함께 남극을 지켜 온 아델리 펭귄이 짝짓기를 하고 있다.[시진제공=극지연구소]


◆황제펭귄을 만나다=14일 오후 케이프 워싱턴으로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약 30㎞ 떨어진 곳이다. 헬기가 지상에 내려앉자 주변에 눈보라가 휘날렸다. 헬기는 황제펭귄 '메인 콜로니(주요 서식지)'에서 멀리 떨어져 착륙했다. 하얀 눈밭에 황제펭귄이 가득했다. 빙하와 설원, 파란 하늘까지 합쳐지면서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이곳은 황제펭귄 7만 마리가 집단 서식하고 있다. 전 세계 황제펭귄의 8%를 차지할 정도이다. 혈기에서 내리자 황제펭귄이 우리를 맞았다. 멀리서 온 손님을 마중하듯 황제펭귄이 먼저 다가왔다. 황제펭귄은 보기보다 컸다. 어른 허리에 닿을 정도였다. 걷는 폼이 뒤뚱뒤뚱하기 보다는 아주 여유로웠다.


하얀 털과 목 부분의 금빛 털이 우아하게 빛났다. 가는 도중 황제펭귄 부부 한 쌍을 만났다. 암컷은 새끼 한 마리를 다리 사이에 꼭 껴안고 있었다. 수컷과 함께 서로 마주보며 새끼를 소중하게 감쌌다.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을 소리를 냈다. 인간의 접근에 경계심을 표현하는 듯 했다.


정호성 극지연구소 박사는 "케이프 워싱턴 지역은 황제펭귄의 주요 서식지"라며 "장보고 과학기지에서도 가까워 우리에게 매주 소중한 생태 보고"라고 강조했다. 황제펭귄 '메인 콜로니'에 접근하자 몇 십 마리의 황제펭귄들이 일제히 다가왔다. 이른바 '가드(보초)' 역할을 하는 펭귄들이다. 무리를 위협하는 존재를 늘 감시한다.


이들은 가끔씩 하늘을 올려 봤다. 하늘에는 스쿠아(Skua, 도둑갈매기)가 날고 있었다. 스쿠아는 어미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새끼를 부리로 쫀다. 새끼가 죽으면 어미가 곁을 떠난다. 스쿠아의 새끼 펭귄 사냥 수법이다.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약 35㎞ 떨어진 '인익스프레스블 아일랜드(Inexpressible Island)'에는 아델리 펭귄 5만 마리가 살고 있다. 아델리 펭귄은 황제펭귄보다 작다. 정 박사는 "아델리 펭귄은 보통 알을 두 개 정도, 황제펭귄은 한 개를 낳는다"며 "황제와 아델리 펭귄의 집단 서식지가 모두 장보고 과하기지 근처에 있어 펭귄 연구에 좋은 길목"이라고 설명했다.


[남극을 읽다]빙하를 씻는 차가운 사막 ▲2015년 1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1년을 보낸 3차 장보고 과학기지 월동대원들이 떠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


◆"3차 월동연구대, 철수하다"=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1년 동안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지내 온 3차 월동대원들이 마침내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로 15일 이동했다.


15일 아침부터 3차 월동대원들의 눈빛이 빛났다. 약 90일 동안 장보고 과학기지를 어둠으로만 채웠던 '극야'를 견딘 3차 월동대원들의 얼굴 표정이 환했다. 오전에 비행기가 도착하면 오후 3시쯤에 이륙할 것으로 예상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비행기가 11시40분에 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3차 월동대원들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생겼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것이 이들의 심정일 터.


마침내 오후 7시쯤 이탈리아 활주로로 한승우 3차 월동대장과 대원 15명이 이동했다. 떠나기에 앞서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4차 월동대원들과 아쉬운 이별을 고했다. 3차 월동대원들은 "고생해라"며, 4차 월동대원들은 "고생했다"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들이 곳곳에 보였다.


월동대원들이 있기에 우리나라 남극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게 가능하다. 세종과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1년 동안 상주하는 이들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는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남극점까지 '코리안-루트(K-루트)' 사업을 시작한다. 내륙으로 가는 기초를 닦는다.


1년을 끝낸 3차 월동대원들은 탑승하기에 앞서 얼음 활주로 위에서 샴페인을 터트렸다. 건강하게 모두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맘껏 누렸다. 남극의 하늘도 새파랗게 빛을 내면서 이들의 귀국을 반겼다. 이탈리아 기지 대원들도 떠나는 우리나라 월동대원들과 손을 잡으며 "수고했다"며 덕담을 나눴다. 3차 월동대원들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한다. 이들에게는 '남극의 1년'이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남극을 읽다]빙하를 씻는 차가운 사막 ▲황제펭귄은 남극의 아이콘이다.





장보고 과학기자(남극)=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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