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명재 칼럼] '어항'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

시계아이콘01분 49초 소요

[이명재 칼럼] '어항'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 이명재 편집위원
AD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그리는 인물 김정호에 대해 우리가 특히 많이 들어온 얘기는 그가 함부로 상세한 지도를 그려 외적을 이롭게 하려 했다는 오인을 사 감옥에서 원통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일제의 조선 집권세력에 대한 폄하 의도에서 나온 날조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진위를 캐긴 쉽잖으나 다만 이 영화의 원작소설 작가 박범신이 그에 대해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주고자 한 뜻이 드높았다”고 말했듯 일말의 진실은 담겨 있는 듯하다. 즉 조선시대 지도는 철저히 정부의 손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당시 나라의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했다는 것과도 겹친다. 그렇게 된 데에는 산과 강이 많은 탓도 있지만 역대 왕조들이 도로를 건설하는 걸 기피했기 때문인데, 이는 도로는 곧 외적의 침략을 부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도로도 그렇지만 강과 내가 많은 땅임에도 교량을 놓는 것을 매우 꺼렸다. 길과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국토, 지역과 지역 간의 단절, 백성에겐 차단된 국토의 형상. 우리는 우리의 국토 공간을 스스로 협소하게 했던 것이다.


조선말 쇄국은 대외적으로 장벽을 친 것이었지만 그와 함께, 아니 그 이전에 우리 내부의 쇄국과 단절이 있었다. 그래서 근대화와 발전이 개방을 통한 것이라고 할 때 그 개방은 이중의 개방과 확장이었다. 외국에 문을 열어 대외적으로 확장한 것이자 우리 내부적으로도 공간을 확장한 것이었다. 또한 그 확장은 공간적인 것이면서 시간의 확장이기도 했다. 다른 공간과의 만남을 통해 그 공간의 시간을 만나 우리의 시간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이 공간과 시간의 확장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지금 한국사회를 거의 전면적으로 바꾸고 있는 김영란법이 해내고 있는 일의 의의도 시간과 공간의 확장에 있다 할 수 있다. 적잖은 허점과 미비에도 오랜 관성과 견고한 기성구조가 제약했던 관계망이 넓어지고, 저녁 시간이 술집에서 벗어나 더욱 충실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시공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한편으로 지금 우리 사회는 퇴행과 후진, 자폐를 심각한 양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시공의 역행과 축소에 다름 아니다.

대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돈을 내 만들어진 어느 재단을 둘러싼 스캔들은 공권력의 편법적 활용이라는 과거의 부활을 보여준다. 이 ‘용(미르)’은 우리를 더 넓은 미래의 시공으로 비상케 하는 것이 아니라 협소한 과거로 추락시키고 있다. 어느 농민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가 쌓아 올린 지식인과 전문가에 대한 신뢰와 권위가 허물어지는 퇴행을 보여주고 있거니와 그 이전에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발단이 된 차벽이라는 기이한 구조물은 공공의 치안력이 극히 협소한 용도에 갇혀버린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자원과 에너지가 우리를 미래가 아닌 과거로, 넓은 대양이 아닌 좁은 우물 안으로 되돌리는 데 쓰이고 있다. 한국 사회를 ‘어항’으로 만들고 있다. 시간에서 되돌리며 공간에서 가두는 시공의 어항으로 만들고 있다.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들은 본래의 성질에선 보이지 않는 난폭함을 드러내며 서로에게 험악해진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려 한다.


우리가 우리 내부에 갇혀 거칠게 다투는 어항이 되는 동안 바깥의 세계는 더 넓어지고 빨라지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일본 홋카이도까지 연결하자고 일본에 제안했다는 소식에서 우리와 바깥 간의 그 대조가 보인다. 이 정부 출범 초기 부산에서 유럽까지 철도로 연결하겠다는 구상과 함께 주창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어항 속에 갇혀 있다. 대통령은 어제 “북한이 고립될 것”이라고 다시 경고했지만 그 경고가 향해야 할 곳은 북한만이 아닐 듯싶다.


이명재 편집위원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