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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잔치 커피/김수열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4초

 
 섬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도
 잔치 커피를 마신다
 달짝지근한 믹스커피를
 섬사람들은 잔치 커피라고 하는데
 장례식장에 조문 가서 식사를 마치면
 부름씨*하는 사람이 와서 묻는다
 녹차? 잔치 커피?


 잔치 커피, 하고 주문을 하는 순간
 장례식장의 '장' 자는 휙 날아가고
 예식장 식당으로 탈바꿈한다
 명복을 비는 마음이야 어디 가겠느냐만
 왁지지껄 흥성스러운 잔치판이 된다
 보내는 상주도 떠나는 망자도 조금은 덜 슬퍼진다

 섬에서는
 죽음도 축제가 되고
 섬에서 죽으면
 죽어서 떠나는 날이 그야말로 잔칫날이다
 망자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도
 달콤한 잔치 커피에 은근슬쩍 중독이 된다


 *'심부름'의 제주 말.

 

[오후 한詩]잔치 커피/김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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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 비할 수 있는 슬픔이 과연 있을까? 더구나 망자가 혈육이거나 부부라면 혹은 친구라면 또는 엊그제까지 함께 밥을 나누어 먹던 이웃이라면 그 거대하고 깊디깊은 슬픔을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그것은 단연코 불가능한 일이다. 망자에 대한 산 자의 슬픔은 영원히 해소될 수 없다. 그래서 산 자들은 삭일 수밖에 없고 견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례식이란 그런 일이 시작되는 첫 번째 자리다. 그러니 온통 슬픔으로 출렁이지만 곡소리는 도리어 맑아야 하고 조등은 오히려 따뜻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하여 마침내 망자를 저 멀리 어딘가로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산 자들의 삶 한가운데로 다시 불러들여 기억하고 서로를 껴안고 쓰다듬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장례식은 그렇게 죽음과 삶이 비로소 함께하는 잔치의 첫날인지도 모른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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