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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세상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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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세상의 근원 허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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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사제는 '재의 수요일'에 믿는 자의 이마에 재를 찍어 십자가를 긋는다. 그리고 말한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시오." 인간의 '재료'로서 흙은 상징이 아니라 실체다. 우리는 죽어서 흙이 된다. 백골이 진토가 된다.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는 19세기 사실주의 미술의 거장이다. 그가 그린 그림 중에 '세상의 근원'이 있다. 여성의 성기를 세밀하게 그렸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걸렸다. 나는 궁금하다. 세상의 근원은 그림 속에 있는가, 그림 밖 세상에 있는가.
 나는 '근원의 근원'을 묻고 있다. 생명은 들어갔던 곳에서 나와야 생명으로서 기능한다. 들어간 구멍과 나온 구멍이 다른 존재는 똥이다. 신은 세상을 만들 때 일관된 원칙을 적용했다. 난생(卵生)이든 난태생(卵胎生)이든 태생이든 '한 구멍 원칙'에는 예외가 없다.

 창조 능력이 있는 존재, 즉 신이나 그와 비슷한 존재들은 태어나는 방식부터 다르다. 예를 들어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왔다. 카필라국의 왕자 고타마 싯타르타는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열어 세상에 들어섰다.
 거기에 비해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의 탄생은 추레하다. 그는 '세상의 근원'에서 나와 구유에서 첫 잠을 잔다. 보통의 인간과 다른 점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기에 '세상의 근원'에 드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는 그의 흠 없음이니,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어 무덤에 들었다 살아 돌아와 제자들을 본다.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가 말한다. "거짓말 마라. 내가 선생님의 옆구리와 손발에 난 구멍에 손을 넣어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 예수가 그에게 나타나 말한다. "나다. 손을 넣어 보아라."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코스메딘 산타마리아 델라 성당 입구의 벽에 커다란 대리석 가면이 걸려 있다. 지름 1.5m나 된다.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이다. 그 입에 손을 넣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목이 잘린다고 해서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a)'이라고 부른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남녀 주인공도 이곳에 간다. 일탈한 앤 공주(오드리 헵번)는 차마 손을 넣지 못한다. 그러나 뻔뻔스런 거짓말쟁이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 젠장, 기자다)는 천연덕스럽게 손을 집어넣는다. 원래 그런 법이다.
 예수라면 로마에 있는 진실의 입에 손을 넣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제자(곧 성직자)가 밥 먹듯 거짓말을 하지만 예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손을 넣어 확인해야 할 것이 그에게는 없다. 예수가 말하였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 아니 예수의 옆구리가 토마스에게 묻는다. 로마 병사의 창에 찔려 피와 물을 쏟아낸 옆구리가 토마스에게 묻는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 예수는 진리를 낳는 자이니 옆구리의 상처는 기독교도에게 '세상의 근원'이다. 2000년 뒤 그를 따르는 무리가 서로를 '형제', '자매'라 부르지 않는가.
 유경희가 던진 매혹적인 질문, "남성의 육체에 각인된 여성의 성기". 나는 영감이 살별처럼 그녀를 스쳤으리라 짐작한다. 로마 가톨릭 교도로서 나는 주일에 한 번 '진리의 근원' 앞에 선다. 내 머리에 피와 물이 쏟아진다.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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