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10분. 거실에 속옷 차림으로 쭈그려 앉은 폼이 지지리도 궁상맞다. 창밖은 칠흑처럼 어둡고 적막한데 홀로 지금 뭐하는 짓인지. 예기치 못한 이른 기상이었다. 그 예기치 못함에 마땅히 답해야 했다. A4 종이를 꺼내 편지를 써내려갔다. "평소 눈인사만 하던 사이에 느닷없이 편지를 남기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은 층간소음이 있게 마련이지만…." 오래간만에 쓰는 손글씨인 데다 유쾌한 내용이 아닌 탓에 필체가 자꾸 잠꼬대를 해댄다. 오자에 비문이 듬성듬성. 명색이 글 밥 먹는 사람인데 안 되겠다 싶어, 종이 한 장을 다시 꺼냈다.
그로부터 1시간 전. 드르륵 쿵 소리에 불현듯 눈을 떴다. 꿈결에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또 다른 소음이 신경을 자극한다. 무언가 긁히거나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발소리와는 전혀 다른 층간소음. 간혹 휴일이면 아침저녁으로 들리던 익숙한 옥타브의 사운드이지만 이날의 새벽 급습은 당혹스러웠다. 눈을 질끈 감고 양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세어보다가 급기야 개, 소, 말을 수십 마리 불러냈지만 결국 포기하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편지에는 불편한 심기를 모두 담을 수 없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오가다 만난 윗집 주인은 조용하고 친절해 보였다. 그러니 최근의 소음은 작은 부주의에서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했다. 따라서 양해를 구하면 금방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작용했다. 출근길에 윗집 대문 앞에 편지를 갖다놨다. 잘 익은 단감 몇 개를 그릇에 함께 담아서. 며칠 전 일이다.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층간소음은 남의 일이 아니다. 아파트 주민이라면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다. 그 가해와 피해의 충돌이 사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전에 살던 아파트의 층간소음도 괴이했다. 무당도 아니건만 어떤 날은 쿵쿵 날뛰는 소리로 염장을 지르더니, 어떤 날은 세상 떠나갈 것 같이 웩웩거리면서 과도한 음주가 자신의 간(肝)과 아랫집의 정신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곤 했다. 그때마다 거칠게 항의를 했지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악순환이었다.
층간소음은 원인도 문제이지만 그 소음에 대한 항의도 세련돼야 한다는 지혜를 최근에야 깨달았다. 진심 어린 엽서나 편지가 이웃 간의 갈등을 치유했다는 인터넷 미담을 수차례 접하고서다. 저 새벽의 편지도 그런 깨달음의 실천이었으니, 다행히 지금까지는 효과만점. 그런데 소음이 다시 발생하면? 참아야 하나, 항의해야 하나, 새벽 편지를 또 써야 하나. 걱정도 팔자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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