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현대자동차가 글로벌 브랜드 ‘제네시스’를 출범시킨 것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세계 고급차 시장의 판매 확대를 위해서다. 현대차 도약의 발판이 됐던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시장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에 고급차 시장에서 활로를 찾아 제2의 도약을 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와 현대차에 따르면 전세계 고급차 시장은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판매 증가율 10.5%를 기록하며 대중차 시장 증가율(6.0%)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도요타그룹과 폭스바겐그룹의 경우 판매 대수는 대중차 브랜드가 많지만, 판매 대수 증가율은 고급차 브랜드가 높다. 지난 2013년 대비 2014년 렉서스는 9.0% 판매가 증가한 반면 도요타는 2.4% 판매가 늘었다. 폭스바겐그룹도 고급차(아우디, 포르쉐, 벤틀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판매 증가율이 대중차(폭스바겐, 스코다, 세아트) 판매 증가율을 3배 이상 앞질렀다.
하지만 현대차는 세계 고급차 시장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의 최상위 세단인 에쿠스는 2010년 12월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올해 9월말까지 누적 판매량이 1만6084대에 그치고 있다. 연간 판매량이 평균 3000대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현대차는 고급차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가 품질의 차이가 아니라 브랜드 차이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품질의 우수성은 인정받고 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JD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지난해와 올해 연속으로 전체 순위에서 선두권에 올랐으며, 대중차 부문에서도 1·2위를 다투고 있다. 지난달 30일 JD파워가 발표한 ‘2015 중국 신차품질조사’에서 전체 46개 일반 브랜드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품질의 우수성은 대중차 시장에서는 통했지만 고급차 시장에서는 먹혀들지 않았다. '가격에 비해 품질이 좋은 차'라는 이미지가 강한 현대 브랜드로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평가받는 메르세데스벤츠, BMW와 경쟁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도요타가 ‘렉서스’, 닛산이 ‘인피니티’, 혼다가 ‘아큐라’라는 고급 브랜드를 론칭한 것과 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현대차는 지난 2004년 1세대 제네시스 개발 착수 시점부터 독립 브랜드 출범을 추진했다. 2008년을 론칭을 목표로 지난 2006년 국내와 북미에서 고급차 관련 태스크포스팀(TFT)이 운영됐고, 외부 전문 컨설팅 업체를 통한 시장조사 및 수익성 분석이 진행됐다.
2008년 1세대 제네시스 차량의 성공적인 출시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브랜드는 출범하지 못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급차 시장이 위축됐고, 내부 기준의 완벽한 충족과 복수의 라인업 확보가 필수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정몽구 회장이 브랜드 런칭을 전격 연기했다.
이번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에 대한 최종 결정은 정몽구 회장이 했지만 정의선 부회장이 주도했다. 현대차 고성능 서브 브랜드인 'N'도 정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품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정 부회장의 생각이라고 한다. 품질은 기본이고, 브랜드 가치를 키워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 그룹 안팎에서는 현대차의 성장 전략이 정몽구의 ‘품질경영’에서 정의선의 ‘브랜드경영’으로 궤도 수정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고급차 브랜드가 출시되면 대중차 브랜드가 확보하기 어려운 고급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고급차 및 슈퍼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폭스바겐그룹의 경우 대중차 브랜드인 폭스바겐에서 이 같은 후광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는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한다”면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내실을 쌓아 세계 고급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견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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