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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백수, 바다에서 '삶의 항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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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 책 펴낸 2등 항해사 김연식씨

청년백수, 바다에서 '삶의 항로' 찾다 카리브해 동부에 있는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제도의 섬들 중 하나인 세인트 유스타티우스 섬을 배경으로 선상에 선 김연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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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청년 백수에서 이젠 어엿한 2등 항해사가 된 남자. 바다 위에서 접안한 국가만 30여개국, 항구는 쉰 곳이 넘는다. 삶이 절망스러웠던 어느 날, 김연식씨(32)는 우연히 해기사(海技士ㆍ항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지닌 면허자격자) 모집 공고를 보고 선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가 항해사로 성장하며 세계 곳곳의 항구도시를 누빈 경험을 담아 책을 썼다.

신간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의 저자인 김 씨를 지난 달 29일 서울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단정하고 말끔해서, '선원'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육중한 몸집과 거친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부산에서 항해사 연수 교육을 마친 뒤 지난 2010년 무급 실습항해사부터 시작한 승선생활이 벌써 6년째라고 했다.


김 씨는 목적지가 수없이 바뀌는 부정기화물선만 탄다. 다양한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다. 곡물과 광물을 나르는 벌크선에서 선장을 도와 배를 모는 1ㆍ2ㆍ3등 항해사들은 하루 여덟 시간씩 3교대 근무를 한다. 짧으면 보름, 길게는 수개월 동안 바다 위에서 지내다 뭍에 오르면 또 다음 목적지를 기다리며 생활한다. 바다에서의 삶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게 했다. 그는 매일 다르게 지는 해, 돌고래 떼들, 짙은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똥별을 숱하게 봐왔다. 육지에서는 야생의 세계를 접했고, 피부색이 다른 가난한 사람들, 춤 잘 추는 여인과 각국의 뱃사람들을 만났다.

"바다에는 또 다른 행복과 가치, 재미가 있어요. 직업을 가졌다는 것, 많은 세계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시간에 대한 소중함,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느낄 만큼 '여유'가 생기게 됐죠."


청년백수, 바다에서 '삶의 항로' 찾다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김연식 지음/예담/1만3000원>

김 씨는 대학시절 공사장 잡부, 행사장 안내원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보탰고, 영어경시대회에서 상을 타 해외어학연수를, 공모전에 당선돼 배낭여행을 다녀올 만큼 바쁘게 살았다. 항해사가 되기 전까진 인천의 한 신문사에서 3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원했던 기자일이 막상 적성에 맞지 않았다. 사표를 쓴 다음 한동안 자동차 정비를 배우고, 건설현장에서 용돈을 벌었다. 그러다 우연히 해기사 공고를 보았다.


그는 "주변에서 많이 반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대를 무릅쓰고 택한 길이기에 책임감이 훨씬 커졌다"며 "(선원생활은) 외부와의 단절, 고된 육체노동 때문에 중도 포기자도 많다. 그래도 '끝까지 가보자'고 스스로를 달랬다"고 했다. 책 제목이 그러한 이유다. 그렇게 김 씨는 항해사 면허, 무전통신ㆍ의료ㆍ구명정 운전 등 각종 자격증을 따냈고, 3등 항해사를 거쳐 2등 항해사가 됐다.


하루 업무를 마치면,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습관이 됐다. 김 씨는 "가족과 친구와 떨어져 살면서 드는 단절감을 해소하고 싶어 그러는지도 모르겠다"며 "인생도 정해진 항로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부정기벌크선 말고도 크루즈 선박이나 '피스보트'와 같은 환경단체 선박도 타보고 싶다"고 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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