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광화문 광장서 빗속 삭발식…배·보상안과 특별법 시행령 철회 요구
[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단식을 해야했고 도보를 해야했고 삼보일배를 해야했습니다.그리고 오늘 삭발까지 하게 됐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가족으로 산다는 건 이렇습니다. 보상금이요? 보상금이 부러우십니까…."
2일 오후 2시, 광화문 광장 세월호 유가족 삭발식 여기저기서는 흐느낌과 탄식이 이어졌다. 단원고 2학년 9반 세희 아빠 임종오씨는 물었다. "보상금이 부러우시냐"고. 그러면서도 말을 더 잇지 못했다.
하루 전날 정부는 세월호 배·보상안을 내놓았다. 정부의 배ㆍ보상 심의에서는 단원고 희생자들에 대해 1인당 약 8억2000만원의 보상액을 지급하는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대해 광장에 모인 유가족들은 배·보상안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전면 철회하라고 소리높였다.
삭발식 도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켜보고 있었던 시민들은 "하늘도 아는 모양"이라며 유가족과 마음을 같이 했다. 굵은 비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삭발은 이어졌다. 시민들도, 삭발식을 취재하고 있던 기자들도 노트북을 접고 카메라를 옷으로 가리면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삭박실에는 50여명의 유가족들이 참여했다. 삭발을 돕던 한 시민은 삭발 내내 연신 눈물을 흘렸다. 오히려 유가족들은 담담했다. 담담한 얼굴의 유가족들은 자녀들의 학생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노란 줄에 달린 학생증 사진에는 뿔테 안경, 긴 생머리에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한 소녀가 웃고 있었다.
단원고 2학년 10반 김민정 학생 어머니는 삭발식 내내 옆에 앉은 민정아빠의 손을 놓지 않았다. 민정엄마는 민정이의 시신이 돌아올 때 함께하지 못했다.
"저는 사고 당일에 정신을 못차리고 쓰러졌어요. 우리 민정이, 저한테 돌아올 때까지 저 혼자 살겠다고 저는 병원에서 누워있었구요, 아빠 혼자 민정이를 데리고 왔고 장례식도 아빠 혼자서 치렀어요. 엄마가 없는 아이도 아닌데요. 우리 아이 마지막을 아빠와 언니 둘이서 보냈습니다. 삼우제도 못 치러줬구요. 못난 부모 만나서요. 우리 민정이 그렇게 보냈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거라도 이거라도….못난 엄마아빠가 이거밖에 해줄 수 있는게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 민정이랑 친구들이 그냥 헛된 죽음이 아니라는 걸 꼭 밝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세희 아빠는 정부가 내놓은 보상안에 울분을 토했다. "대한민국에서 유가족으로 산다는게 어떤건지 지난 일년동안 저희들이 해 온것을 보시면 됩니다. (진상규명을 해달라며) 단식을 해야했고 도보를 해야했고 삼보일배를 해야했습니다.그리고 오늘 삭발까지 하게 됐습니다. 보상금이 부러우십니까, 부러우시면 유가족 되시면 됩니다. 바라건대 저희처럼 또다른 유가족이 발생하지 않도록, 간절히 바랍니다. 저희들, 먼저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처럼 되는 사람들이 더 없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저희는 앞으로 계속해서 가겠습니다."
삭발이 끝나고 유가족들은 모여 구호를 외쳤다. "시행령을 폐기하라, 세월호 선체 온전히 인양하라, 얘들아 보고싶다, 실종자를 돌려달라."
구호를 외치는 유가족들의 맞은편은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였다. 광화문 광장 건너에는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 국토분열 중심에서 속히 내려오세요"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한국 사회의 현주소가 나뉘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참사 1년이 된 시점의 사회 심리는 유가족과 그 맞은편으로 양분돼 있다는 점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였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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