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한중 양국은 5일 제2차 외교·안보대화를 가졌다. 외교부 동북아 이상덕 국장과 중국 쿵쉬안여우 외교부 아주국장이 각각 수석대표로 하고 차석대표로는 양측 국방부 부국장급이 참석했다.
이른바 '2+2대화다'.한중 외교·안보대화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한 합의에 따라 신설된 4개 대화 채널 중 하나로 한중관계가 점점 밀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한중 관계는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급속히 가까와졌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이에 화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7월 서울을 방문했다.양국관계는 경제관계 중심에 이제 외교 안보관계로 격상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한중 관계는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한미 관계에 비하면 걸음마에 불과하다. 미국의 중국견제론, 미일의 봉쇄론을 돌파하기 위해 중국은 간절히 한국을 필요로로 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7월4일 서울대에서 한 강연에서 당 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를 인용해 양국의 우호협력관계를 강조했다. 시 주석은 "당나라 시선(詩仙) 이태백이 '거친 바람과 물결 헤칠 때가 오리니 돛을 달고 거센 바다를 건너리(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라는 명구를 만들었다. 우리가 협력의 바람을 타고 파도를 가르며 지속적으로 나아갈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하면서도 미국 등 우방국과도 긴밀히 소통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외교의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이다.
◆격상중인 한중 관계=한중관계는 그동안 경제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해 두 나라나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단일 경제권이 됐다. 양국 교역규모는 2013년 기준으로 2289억2200만달러였다. 올해는 관세장벽 철폐 등으로 3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정상외교도 활발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APEC) 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취임 후 다섯 번 시 주석을 만났다.
양국민 왕래도 활발하다.특히 중국인들이 한국을 많이 찾는다. 지난해 6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인들의 비자발급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우리 정부는 올해부터 외교관들의 비자를 면제했고, 중국 단체여행객들의 비자발급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2+2대화'는 한중 관계가 경제분야에서 외교·분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한중 외교·안보대화는 2013년 6월 한중 정상회담 합의에 따른 것으로 12월에 중국 베이징에서 1차 회의가 열렸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과장급이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부국장급으로 격을 높였다. 박철균 국방부 국제정책차장과 류중빈(劉中彬) 중국 국방부 외사판공실 아주부국장이 차석대표로 참석했다.
외교부는 “양국 국방부 대표가 격상됨에 따라 명실상부한 한중 간 외교·안보대화의 형태로 전략적 소통이 강화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한미 양국이 외교·국방장관(2+2) 회담을 격년 주기로 갖는 것에 비해서는 격이 낮지만 한국이 일본과는 이 같은 협의체를 아예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중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양국은 이번 대화에서 양국은 양국간 외교·안보분야 협력, 한반도 문제, 지역 및 국제정세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2015년 중국의 향방=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연원의 외교안보연구소,민간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이나 세종연구소 등 연구기관들은 올해 동북아의 최대 변수로 미중관계를 꼽고 있다. 이는 중국의 급성장 전략과 미국의 중국 견제전략의 충돌에 대한 우려의 표시로 받아들여진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지난해 말 발표한 '2015년 국제정세 전망'에서 중국이 올해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가기 위한 포석을 더 정교하고 과감하게 두는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즉 중국은 더 전방위적이고 세련된 공세전략을 펼쳐 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2013년 신형대국관계, 2014년 아시아안보포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협정(FTAAP) 등을 제시한 중국은 새로운 지역질서 구축을 위한 포석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아산연은 "2015년은 이와 같은 제안들을 더 구체화하고 이행해나가는 첫해가 될 것이며 이는 궁극으로는 미국 중심의 지역질서를 장기적으로 변화시켜 나가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아산연은 2014년 미·중, 중·일간의 갈등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갈등은 2015년에는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과 중국 간에는 '협력과 경쟁'이라는 이중구도가 점차 정착될 것이다. 반면 국제정세의 축과 국제사회의 관심이 다시 유럽과 중동으로 쏠리면서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재균형 전략의 추동력은 더욱 약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는 곧 미국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연구소 역시 비슷한 진단을 하고 있다. 외교안보연구소는 최근 펴낸 '2015년 전망'에서올해 중국과 미국이 남중국해와 무역통상 등의 이슈 영역에서 갈등을 표출할 것이며 미중간 갈등은 중국의 확장적 현상변경 추구 정책에 따른 내재된 갈등이 표출되는 시작점에 해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한중 관계는 더욱 굳어질 것으로 전망됐다.외교안보연구소는 중국은 시 주석 취임 이후 한·중관계 발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더욱 공고한 관계 형성에 역점을 둘 것이라는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소는 "중국은 한·중관계를 지금까지의 '이익공동체' 형성단계에서 '운명공동체' 형성단계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또 중·일 갈등에도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정책을 취할 것으로 연구소는 예상했다.역사 문제와 해양영유권을 둘러싸고 악화된 양국관계가 경제, 사회, 비전통안보 영역에서의 협력에 장애물로 작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라고 연구소는 진단했다.
연구소는 이에 따라 올해 한중일 3국은 공히 더 이상의 갈등을 지양하고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상호 윈윈하는 길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할 것으로 보고 중국은 한국의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도 크게 다르지 않는 분석을 내놨다. 세종연 이상현 안보전략연구실장도 5일 '2015년 국제정세 전망'에서 동아시아의 최대 변수로 미중관계의 향배로 꼽았다. 이 실장은 중국의 부상과 동시에 러시아, 일본의 지역 영향력 확대 전략이 가속화되는 양상으로, 현재로서는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우위가 확실한 가운데 중국의 도전이 서서히 가시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실장은 "미중의 상호 경제의존도 심화, 핵평화도 작동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미중 간의 군사적 경쟁은 지속되나 직접 군사충돌 가능성은 매우 낮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국, '이이제이' 유연성 발휘해야=미국과 중국의 상호견제와 경쟁은 한국에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을 자기 편으로 완전히 끌어들이거나 최소한 상대의 진영에 편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압박과 회유, 유혹의 손길을 보낼 게 틀림없다.
세종연 이상현 실장은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활동 공간을 확보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과 일본도 세계를 상대로 공공외교를 강화하면서 자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두 나라 외교의 중요한 대상이다.
중국은 역사문제에서는 양국이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해서 강조하면서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한중 수교 50년의 의미를 부각하면서 새로운 50년을 같이 설계해야한다는 미래지향적 접근을 강조할 것으로 이 실장은 예상했다.
이 실장은 "이는 2015년 내내 한국외교의 큰 부담과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신년사에서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일본은 지난해 12월24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배포하는 등 한국의 의견에 전혀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는 탓에 한국은 협력과 갈등의 기로에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가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하는 한국은 어느 쪽도 경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일본도 정치 외교 분야에서는 밉기 짝이 없는 대상이지만 경제와 안보,사회 문화 교류를 해야 하는 이웃 국가여서 투트랙 접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자칫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실장이나 아산연 공히 지적하는 대목이다.
해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실장은 "한미관계와 한중관계가 제로섬관계가 아니라는 인식하에 그런 인식을 미국 및 중국과 공유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는 서로가 배타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병행 추진할 수밖에 없는 어젠다"라면서 "한미중, 한중일 등 소다자 네트워크확대, 중견국 외교로 강대국 정치의 틈새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우리나라가 거센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부처의 사고의 유연성과 설득하는 노력이 올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하겠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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