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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아침]통행금지 해제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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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웨~~엥'
밤 12시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도시의 골목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죠. 술을 마시다 시간을 놓친 사람들은 골목길로 숨어들지만 결국 붙잡혀 경찰서 유치장에 있다가 통금이 풀리는 4시가 되어야만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간혹 일부러 통금 시간에 걸려 여관방으로 가는 구실을 삼는 연인들도 있었지요. 지방의 기차역에서는 혹시 연착이 돼 통행금지 시간에 기차가 도착할라치면 손바닥에 도장을 찍어 주기도 했습니다. 단속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려는 것이죠.

[이야기가 있는 아침]통행금지 해제 되던 날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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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국경지방이나 도성에는 통금이 있었습니다. 궁궐의 보루각에서 밤 10시 경에 통금을 알리는 인경(人定)을 28번을 치면 4대 문은 굳게 닫혔지요. 이후 딱딱이를 든 순라꾼들이 순찰을 돌았구요. 새벽 4시 경에는 33번의 북소리인 파루(罷漏)로 통금 해제를 알렸습니다. 또 해방후 통금이 있을 때에도 크리스마스나 석탄일 등 특별한 날엔 통금이 없기도 했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일부 주나 도시에서는 지금도 미성년자에 대한 제한적 통금을 실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범죄나 대형 재해가 발생했을 시에 일시적으로 통금이 실시되기도 하구요.

1982년 오늘은 우리나라에 통행금지가 해제된 날입니다. 이날 경기도와 강원도의 휴전선지역과 해안선을 낀 일부를 제외한 전국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된 것입니다. 당시 고3이던 저도 친구들과 시내를 쏘다니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 통금이 풀리지 않은 지역은 88년 1월 1일에 모두 해제됩니다.


통금이 생긴 것은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해방후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청이 '미군정 포고 1호'를 통해 경성과 인천에 야간통행금지를 선포하면서 부터입니다. 이후 관광지인 제주도가 1964년에 먼저 풀리고, 65년에는 내륙지역인 충청북도가 풀렸습니다. 1966년에는 수출산업과 관련된 수송 수단과 일부 관광지가 추가로 해제되었구요.


통행금지는 분단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특수성에 기초해 국민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족쇄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쿠데타로 집권한 제5공화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치안유지와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국민들을 달랠 방안도 필요했습니다. 통금해제는 이같은 맥락에서 시행된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정부는 중고등학생의 두발과 교복 자율화를 연이어 선포합니다. 또 국내에 프로야구가 시작된 것도 같은 해였지요.


통금 해제는 24시간 생산이 가능해 경제에 도움이 됐지만 야간 향락문화가 성행하는 등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오늘도 서울의 강남 신촌 홍대앞은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불야성을 이루겠지요.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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