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밴쿠버서 銀따고 '시건방춤' 춘 막내가 이젠 맏형…"4년 뒤 우리팀 목표는 전관왕, 빅토르 안도 이기고 싶다"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카메라 플래시가 어지럽게 터졌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맏형 곽윤기(25·고양시청)는 멋쩍은 웃음을 머금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각오와 소감을 말할 때는 여러 번 생각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시상대 위에서 걸그룹(브라운아이드걸스)의 춤을 흉내 내며 뒤풀이를 하던 당돌한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곽윤기는 17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쇼트트랙 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자신을 '구식 선수'라고 소개했다. 신다운(21·서울시청), 서이라(22·한국체대), 박세영(21·단국대), 한승수(23·고양시청) 등 후배들은 '신세대 선수'로 분류했다. 2012-2013시즌 이후 2년 만에 복귀한 대표팀에서 이정수(25·고양시청)와 함께 가장 나이 많은 선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곽윤기가 주장을 맡은 남자 대표팀은 19~21일 목동에서 열리는 2014-201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에 금메달을 목표로 출전한다. 특히 5000m 계주는 캐나다 몬트리올 2차 대회(11월 17일)와 중국 상하이 3차 대회(12월 14일)에 이어 3회 연속 우승을 노린다. 곽윤기는 "막내로서 항상 형들에게 기대다가 후배들을 품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부담스러워했다.
곽윤기는 최근 2년 동안 국제무대를 비웠다. 지난해 2월 발목을 다쳤다. 그해 2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월드컵 5차 대회 도중 통증을 느꼈고, 2월 9일 독일 드레스덴 6차 월드컵이 끝난 뒤 수술했다. 그 후유증으로 4월 12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당연히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 사이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리 대표 팀을 이루는 선수들이 바뀌었고 외국 선수들의 기량도 놀랍게 향상됐다. 샤를 아믈랭(30·캐나다)과 빅토르 안(29·러시아) 등 기존 강호들은 물론 네덜란드, 미국, 이탈리아 등 경쟁국들의 실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곽윤기는 "특정 선수를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종목마다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 예전에는 준결승전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예선통과도 낙관하기 어렵다"고 했다. ISU가 경기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추월하는 선수에게 어드밴티지를 부여하면서 뒤에서부터 몸싸움을 시도하는 등 경기가 거칠어졌다고 한다. 체격이 크고 힘 좋은 유럽 선수들과의 대결이 부담스러운 이유다. 곽윤기는 "대표팀에서 밀려난 뒤 후배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꾸준히 단점을 보완했다. 출발부터 속도를 높여 선두에서 레이스를 운영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 시즌의 시작은 순조롭다. 그는 상하이 3차 대회에서 500m 1차 레이스 금메달과 5000m 계주 우승으로 2관왕에 올랐다. 개인종목 금메달은 2012년 12월 상하이 4차 월드컵 1000m 우승 이후 2년 만이다. 한국 선수들의 취약종목이던 단거리에서 일군 성과에 자신감도 붙었다. 곽윤기의 복귀는 후배들에게도 긍정적이다.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된 남자 대표팀은 소치올림픽에서 경험부족 문제를 드러내며 메달을 한 개도 따지 못했다.
쇼트트랙 대표팀에는 선수단을 독려할 구심점이 필요했다. 신다운은 "(곽)윤기 형이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다. 주장으로 후배들을 잘 이끌고, 스케이팅에 필요한 기술을 모두 배우고 있다"고 했다. 곽윤기가 생각하는 장점은 소통이다. 코칭스태프와도 자주 대화하며 팀이 단단해졌다고 한다. "이전 대표팀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분위기"라고 했다. 지난 5월 13일 부임한 김선태 감독(38)은 "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책임감을 부여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면담과 대화를 많이 했다"고 했다.
500m 우승으로 첫 발을 뗐지만 곽윤기는 주 종목인 1000m와 1500m 우승에 더 욕심을 낸다. 탁월한 스피드로 경쟁 선수들의 몸싸움과 추격을 따돌리는 것이 승부수. 그는 "남자 대표팀은 4년 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모두 따는 것이 목표다. 빅토르 안 역시 늘 이기고 싶은 상대다. 지금의 분위기와 마음가짐만 유지한다면 큰 문제가 없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각오를 되새겼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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