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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아침]우리 '말'과 '글'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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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1921년 오늘은 지금의 한글학회에 모태가 된 ‘조선어 연구회’가 창립된 날입니다. ‘우리의 말과 글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든 것이 뭐 그리 대수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엔 일제가 우리 나라를 강제로 삼킨 지 10년이 넘어가는 시점이었습니다. 우리 말과 글을 지키겠다는 생각 자체가 긴요한 때였던 것입니다. 일제가 이를 곱게 볼리 만무하였겠죠.


[이야기가 있는 아침]우리 '말'과 '글'을 지켜라 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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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연구회는 한국에서 결성된 최초의 민간 학술단체입니다. 장지영, 김윤경 등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 10여명이 주축이 돼 결성했습니다. 강연회와 연구발표회 등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죠.

연구회는 1927년 2월부터는 ‘한글’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합니다. 이어 1929년에는 조선어사전을 편찬할 작업에 들어갔으나 일제는 이를 출판하지 못하게 합니다. 1931년에는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합니다. 이 때 발표된 맞춤법 통일안은 지금까지 표준이 되고 있죠.


일제는 한국 식민지화에 더욱 열을 올리면서 마침내 1938년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고 한국어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우리말을 사용하지 말고 일본어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을 깡그리 말살하려 한 것이죠.

이 같이 암울한 시기에 1942년 10월 함흥의 한 여학생이 한국말로 대화하다가 일본 경찰에 적발됩니다. 조사를 받던 중에 조선어학회 관련자가 있다는 이유로 일제는 대대적인 검거에 나섭니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 입니다.


조선어학회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일본은 더디어 구실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33명이 검거돼 혹독한 고문을 받습니다. 이 중에 16명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명을 뒤집어 씌워 형무소에 수감 해버립니다. 수감자 중 2명은 고문 후유증과 굶주림, 추위 등으로 옥중에서 사망하고 맙니다.


조선어학회는 해방 후 1949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영어에다 제2 외국어까지 극성스레 외국 말을 배우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우리말을 가르치는 노력을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선조들의 고생에 새삼 고개가 숙여집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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