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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교황 따라 '일어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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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할 모델(role model)'을 원한다. 풍진 세상에서 스스로의 위선과 타락에 수치를 느낄 때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찾고 그로부터 감화받기를 바란다. 백만 인파를 운집시킨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지지는 그가 가톨릭 교회의 최고 성직자라는 사실을 넘어 약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보편적 인간애를 몸소 실현함으로써 '이렇게 살라'는 말이 아닌 '이렇게 살고 있음'을 보여줘 왔다는 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황에 대한 이러한 열렬한 환호가 이어지는 며칠간 한국 종교계는 다소 민망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 사회의 종교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형화된 교회의 권력화와 세습화, 현실의 고통에서 유리된 채 '성역'으로서만 제 존재를 증명하려는 안일과 나태는 종교에 대한 조롱과 냉소를 낳고 있다.


특히 교황을 맞아 환호하는 한국의 천주교에는 추기경이 두 명이나 있지만 그 존재감은 미미하다는 평가가 많다. 예컨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제들에게 "교회 밖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온 데 반해, 두 추기경은 "현실 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사제의 몫이 아니다"고 말한다.


16일 광화문에서 열린 시복미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도중 이례적으로 차를 세우고 단원고 학생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에게 직접 다가간 교황의 행동은 교회 밖에서, 약한 이들과 함께하기를 독려해온 그의 가치관이 담긴 상징적 장면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누군가'가 직접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어나 비추어라'라는 이번 교황 방한의 기념 로고가 그 '누군가'에게 '일어나라'고 말하는 듯하다. '일어나라'는 말은 다른 누구보다도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야 하는 종교인 자신에게 던지는 질타이며 요구가 아닌지 종교인들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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