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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헌신한 윌리엄 린턴 후손, 한국인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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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는 독립운동가의 후손 16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는 특별한 행사가 진행됐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지원한 윌리엄 린턴 선생(1891~1960ㆍ한국명 인돈)의 증손자 데이비드 린턴(43ㆍ한국명 인대위)씨도 이날 국적증서를 수여받았다.


그는 "감회와 영광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며 "대한민국이 더욱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한국의 청년실업 실태에 관심이 많다. 법률적인 지식과 사업모델을 결합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한국 사람이 됐으니 대선ㆍ총선 때 당당히 투표를 하고 싶다는 의사도 나타냈다.

한남대 설립자인 윌리엄 린턴 선생은 1912년 입국해 48년 동안 호남ㆍ충청 지역에서 선교 및 교육사업에 헌신했고, 3ㆍ1 운동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해외에 알린 인물이다.


이후 100년이 넘는 동안 50여명의 가문 후손들은 한국과 계속 인연을 맺어왔다. 인대위씨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발을 디뎠다. 2012년 귀화해 한국 이름 '인요한'으로 더 잘 알려진 존 린턴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교수도 그의 숙부다.

그는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이 한국에 가서 가족사의 발자취도 한 번 찾아보고 그 나라에 대해서도 한 번 느껴보고 오라고 말해서 (집안 아이들이) 다 한 번씩 다녀오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인대위씨는 그 이후 한국을 자주 오가게 됐다. 미국에서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서울 신림동에 자취방을 마련해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서울대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작은아버지인 스티브 린턴이 설립한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유진벨재단의 업무를 함께하게 되면서 한국에 점점 뿌리를 내리게 됐다. 현재 린턴은 앨라배마주 대법원 변호사 등으로 활동한 경력을 살려 국내 한 대기업 법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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