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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정도전의 호 '三峰'에 숨은 뜻(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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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퇴계의 사랑 두향(58)


[千日野話]정도전의 호 '三峰'에 숨은 뜻(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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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정은 고려 말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삼봉정에 오르자, 이지번은 삼봉 정도전(1342~1398)에 대한 감회가 일었는지 말을 꺼낸다.


"삼봉은 원래 봉화의 토족(土族)이었지요. 스물두 살에 충주사록에 임명되면서 관직을 시작했고, 고려 공민왕 때 유학(儒學)현창사업을 벌일 때 성균관의 교관을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 정몽주나 이숭인도 함께 참여했었고…. 그 다음 왕이었던 우왕 때 권력을 잡은 이인임과 충돌하는 바람에 회진현(전라도 나주)에 유배를 갔습니다. 그때 거기서 민심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의 민본사상은 이 무렵에 기틀을 갖추지 않았나 싶습니다."

공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 화진현의 한 농부가 들녘에서 정도전에게 한 충고는 두고두고 정치하는 사람들을 꾸짖는 말이 되었지요. '관리들이 국정이나 민생 현장에는 관심이 없고 기강과 풍속만 어지럽히며 녹봉만 축내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정도전이 정치의 혁신이 불가피함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퇴계가 말했다.
"삼봉의 대의(大義)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조선의 기틀을 만든 분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양 천도와 경복궁 창건, 또 경국대전의 바탕이 된 조선경국전이 모두 그의 기획에서 나왔다 할 것입니다. 다만 그가 왕국의 기틀을 견실히 갖추어야 할 시기에 과욕과 졸속으로 무리하는 바람에 정치가 갖춰야 할 순리(順理)를 거스른 점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좌중은 저마다 동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학자들의 왕국을 만들기 위한 그 뜻은 결국 민심이 나라를 지배하는 이상국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패도(覇道)를 견제하는 일은, 옛일을 상고해봐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중국까지도 경쟁자로 여기고 태조에게 '외이(外夷ㆍ오랑캐)가 중국의 중심에 들어가 왕이 되는 사례가 있었다'고 간언하지 않았습니까?"


공서의 말에 이지번이 말했다. "정말 대단한 의기를 가진 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명월이 말했다. "몇 년 전 스승(서경덕)이 삼봉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도담삼봉을 호(號)로 삼은 것은 단순히 단양의 절경(絶景)을 그리워한 때문이 아니라, 중봉ㆍ남봉ㆍ북봉이 각각 천지인(天地人)의 삼원(三元)사상을 은유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봉은 하늘이며 남봉은 땅이며 북봉은 바로 사람이라 여겼던 것이지요. 하늘은 천심이며 군주이고 땅은 농토이며 신하들이고 사람은 바로 민심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군주와 신하와 백성이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 세 존재가 어떻게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삼위일체의 삼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퇴계가 놀란 눈으로 명월을 바라보았다.


"과연 범상치 않은 해석입니다. 천지인은 바로 단군ㆍ환인ㆍ환웅의 삼신(三神)과 통하는 조선의 옛 사상이니, 정도전의 깊고 넓은 사유체계에 걸맞은 풀이가 아닐 수 없소이다."


이때 이지함이 말을 꺼냈다.
"중국의 옛 역사책들은 한족의 근간인 황제(黃帝)가 동이 땅(조선)에서 신선술을 배웠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나오고 갈홍의 '포박자'에도 그런 얘기가 등장합니다. 특히 포박자에는 황제가 청구(靑丘ㆍ조선 땅)에서 자부(紫府)라는 스승으로부터 삼황내문(三皇內文)이라는 비밀 책을 건네받았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신선술과 선도(仙道)의 고향을 동이국으로 꼽습니다. 또 조선의 도가(道家)들은 저 삼황내문의 출처가 바로 단조협(단양 골짜기)이라고 지목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특히 토정은 그 방면의 이야기에 참으로 밝으십니다. 하지만 유학의 본분은 상식에 의거한 정치와 현실에 뿌리내린 본성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야기가 좀 멀리까지 가는 듯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허허." 공서의 너스레에 좌중은 껄껄 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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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단양 제1경은 '사암풍병'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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