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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뱅잉하는 '햄릿'..죽느냐, 사느냐 발버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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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줄이고 주변인물 입체적으로 묘사..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

헤드뱅잉하는 '햄릿'..죽느냐, 사느냐 발버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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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거기 누구냐"
보초병이 유령을 향해 다급하게 외친다. 유령은 햄릿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동생에게 독살당하고, 부인마저 빼앗겨버린 선왕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선왕의 망령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헤매는 듯 부유한다. '누구냐'고 묻는 말에 유령은 침묵한다. 아버지의 장례식과 어머니의 결혼식을 연달아 치러낸 햄릿 역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구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무대 위 곳곳에 배치돼있는 '거울'에 둘러싸여져 햄릿은 말한다. "나란 놈은 과연 누구란 말이냐..."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이미 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진 작품이다. 누구나 다 아는 고전이지만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 '햄릿'은 여기에 새로움을 보탰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주제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등장인물의 묘사나 무대장치 등을 새롭게 변주했다. 양복을 입고 등장한 '햄릿'의 손에는 칼이 아닌 총이 들려져있다. 숙부의 대관식에 참석한 인물들은 록 비트의 음악에 맞춰 헤드뱅잉을 선보인다. 고전에서 튀어나온 햄릿이 아니라 동시대의 인물을 보는 느낌이다.


헤드뱅잉하는 '햄릿'..죽느냐, 사느냐 발버둥치다

오경택 연출은 "'햄릿'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지만 "먼 옛날 덴마크에 살던 왕족과 귀족들의 모습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려 애썼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원본 대사의 약 50%를 덜어 내고, 수동적이고 평면적으로만 그려졌던 햄릿 주변 인물들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내는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와 어머니 거트루드, 두 여인의 속내를 드러내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 결과 원작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과 깊이, 비극성과 비장함은 덜어진 반면 친밀함과 공감은 살렸다.


특히나 무대 위에 걸려있는 크고 작은 금속판들은 햄릿을 비추거나, 햄릿에게 유령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기능을 한다. 배우들의 등장과 퇴장도 이 금속판을 통해 이뤄지는데 그 때마다 터져나오는 금속의 굉음은 타인과 단절된 이들의 내면을 들춰보는 듯 하다. 고뇌하는 햄릿, 미쳐가는 오필리아, 욕망에 허덕이는 거트루드, 불안함에 시달리는 숙부 클로디어스 등은 거울 속 자신의 이미지를 외면하거나 부인한다.


'햄릿'을 맡은 배우 정보석은 배우생활 30년의 꿈이 '햄릿'이었다고 말한다. 햄릿은 "미친 척하는 게 아니라 실제 미치기 직전까지 가 있는 인물"이라고 해석한 그는 햄릿의 광기를 온 몸으로 표현한다. 역시 마지막 대사는 저 유명한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끝나는데, 오경택 연출은 "'관절이 어긋난 세상'에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외롭고 연약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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