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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계화를 열망했던 연암의 꿈..200년 후 세계속에서 발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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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230여년 전 조선의 세계화를 열망했던 '영원한 청년' 연암 박지원의 꿈이 세계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다. 연암의 '열하일기'가 한 영문학자의 고된 작업 끝에 영역돼 'K-문학'의 세계화를 선도하는 중이다.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세계인들을 향한 'K-문학'의 행보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한류 콘텐츠 중 비교적 늦은 장르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문학의 성과에 비해 평가가 미진한 분야로 꼽힌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고은 시인을 비롯, 많은 문인들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한국문학을 알리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문학 고전의 영역은 '허난설헌 시선집, '심청전' 등 사례가 극히 적다. 고전 한문학은 아예 없다. 지난 7일 대산문학상 번역상을 수상한 최양희 전 호주국립대 교수(사진)의 영역본 'The Jehol Diary 열하일기'는 한국 고전 한문학으로는 이례적으로 세계 유수의 도서관에 소장될 만큼 성공적인 영역작업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최교수의 번역본은 연암 박지원(1737∼1800년)의 '열하일기' 전 26편 중 3편이다. 제1편 '도강록', 제2편 '성경잡지', 제3편 '일신수필' 등으로 번역(해제와 주석 첨부)해 2010년 말 영국의 글로벌 오리엔탈(Global Oriental)과 네덜란드의 브릴(Brill)을 통해 공동 출판했다.

온라인컴퓨터도서관센터 전세계 검색시스템(OCLC World Cat)에 따르면 열하일기 영역본은 출판 직후 석달 동안에만 영어권 및 유럽 572개 도서관과 기타 세계 392개 도서관에 보급됐다. 한국문학도서로서는 매우 빠른 보급이다.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 설립 이후 10월 현재까지 해외에 번역ㆍ소개된 작품은 30개 언어권, 900여건 미만이다. 대부분 노벨문학상을 겨냥, 현대 작가의 마케팅적 측면에 집중돼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 고전의 영역이 미진한 상황에서 열하일기 영역본은 서양에서 한국 고전 한문학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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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는 영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작품으로 통한다. 한국학자이며 한국고전번역가로 한문에도 능통한 개화기 캐나다 선교사 기일(奇一, James Scarth Gale)은 '열하일기' 번역을 시도, 실패한 적이 있다. 기일은 단 8페이지를 번역한 채 'Too difficult and obscure for words' 라는 후기를 남기고 포기했다.


'열하일기'는 원문이 한문으로 중국고문에 해당된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중국 고문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중국 고문을 모방하지 않고 사실주의 문학을 추구하고 있어 서양의 고문 전문가들이 매우 이해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많다. 특히 '열하일기'는 정본 없이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지난 1911년 처음 활자본이 나왔다.


현재 국역본 '열하일기'는 '고전국역총서', '나랏말씀총서', '겨레고전문학선집' 등에 실려 있으며 활자본에 의존하고 있다. 이 세권의 국역본이 상이한 점은 원문이 없다는데서 연유한다. 따라서 한국 고전한문학 중에서도 열하일기는 영역하기란 어려운 작품으로 분류돼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최 교수의 열하일기 영역 작업은 5년에 걸쳐 이뤄졌다.


최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우리 역사상 매우 귀중한 작품을 원작 이상으로 충실히 재현하겠다는 욕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최대한 영어권 독자에 흥미를 끌도록 번역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매우 컸다"고 술회한다. 그만큼 열하일기라는 고전한문학이 갖는 무게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열하일기는 조선 정조(재위 1776~1800년) 때 북학파의 거성인 연암 박지원의 명저다. 정조 4년(1780년)에 청나라 건륭제(재위 1736~1795년) 70세를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금성위 박명원(연암의 삼종형으로 영조대왕의 부마)을 수행해 중국의 성경, 북경, 열하 등을 돌아보고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기록문학이다.


박지원은 중국의 산천, 풍토, 문물, 통도, 요새, 역사, 풍속, 건축, 인물, 정파, 경제, 종교, 문학, 예술 등 중국의 다양한 사회상을 정리했다. 또한 청 문화를 습득, 이용후생 측면에서 조선의 토지제, 과거제, 농업, 문물 등에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즉 열하일기는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 조선 개혁안을 담은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열하일기 탐독은 조선 사회 후기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당시 조선 사회는 정조의 개혁정치로 실학이 융성하게 발현, 세계를 배우고자 하는 조선 신세대의 열의가 일찌기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홍대용(1731∼1783년)은 이같은 분위기를 잘 설명해주는 인물이다.


홍대용은 지적 호기심으로 수많은 문물과 인재가 모인 중국 연경에 가고자하는 의욕에 차 있었다. 홍대용은 일찍부터 중국어를 익히며 착실히 준비했다. 1765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가는 숙부를 졸라 60여일간 베이징 등을 여행할 수 있었다.


그는 날마다 중국학자를 만나 친교를 맺고, 토론에 벌였으며 그 중에서도 독일인 선교사로 흠천감(현 기상청) 감정인 유송령과 부정인 포우관으로부터 천문학, 천주교 등 서양철학, 서양 기술 등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그 결과물이 연경 기행문인 '연기'와 '유포문답'이다.


열하일기는 당시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 세계화를 꿈꾸는 청년세대들의 꿈과 열망, 소통 정신이 담긴 역작이다. 이를 국역본도 함께 참고하며 영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최교수의 노고를 짐작케 한다.


현 시점에서 한국문학은 외국어 번역이 극히 저조하며 그 중에서도 고전문학은 손꼽을만큼 적다. 한국문학은 한글의 난해함(실은 미세한 감정까지 깊게 다룰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 세계인과 일치하지 않는 한국적 감성 코드로 인해 번역이 결코 만만치 않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K문학의 세계화는 간단 없고, 지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문학에는 근대 이전엔 중국문학, 근대화 이후엔 서양문학과 일본문학의 영향이 존재한다. 해방 이후 민주화를 거치는 동안 한국적 정서에 눈 뜨고, 민족적 세계관이 외국인들의 감성과 맞물려가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획득해가고 있다. 이에 K문학의 세계화도 점진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9년 9월 발행된 독일어권 문학사전 '킨들러 문학사전' 최신판에는 생존작가 15명을 포함, 고전·근현대문학 작가가 대거 실렸다. 최치원, 김시습, 정철, 황진이, 박인로, 윤선도, 김만중, 박지원 등 조선문인 7명과 한용운, 이광수, 김소월, 김동리, 김수영, 박경리, 이청준, 박원서 등 작고 문인 8명, 이호철, 고은, 최인훈, 황동규, 오태석, 김광규, 김지하, 김원일, 황석영, 이강백, 오정희, 이문열, 황지우, 김혜순 등 생존문인 14명이다.


이제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발돋움해 가는 중이다.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세계인의 감성을 울리는 작가와 작품은 더욱 늘어날 태세다. 문학은 인간의 의식에 오랫동안 머물며 정신세계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세계인의 보편전 정서와 한국적 정서의 소통을 위해서도 K문학의 세계화가 절실하다. 이에 맞는 우리의 노고가 더해져야 할 상황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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