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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파크]"국립도서관정책 급변"..세종도서관, 민간위탁 논란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28초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위대한 국가 경영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책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서가는 책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차 있고, 그 중심에는 '미네르바'가 빛난다. 우리도 그런 역사가 있다. 세종의 집현전과 정조의 규장각이다. 세종은 즉위 즉시 학문ㆍ지식의 전당인 '집현전'이라는 왕실도서관을 열어 젊은 학자들을 모았다.


집현전은 국방, 외교 등 국가 정책을 담당하는 싱크탱크, 자연과학 등 과학기술입국 건설을 위한 R&D, 새로운 문화 및 산업 생산성 축적, 관리를 수행하는 연구소 기능을 수행했다. 규장각 또한 학문의 힘으로 사람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려 했던 개혁 군주의 숨결이 배여 있다. 정조는 창덕궁 뒷편, 왕실만의 휴식공간이었던 '비원' 한편에 규장각이라는 도서관과 토론장을 두어 학문의 전당을 세웠다. 그처럼 도서관은 학문과 지식의 소통공간으로 세상을 바꿀 무기고 역할을 한다.

반대로 포악한 국가경영자는 금서, 분서 등을 서슴치 않았다. 더러운 침략자 역시 항상 피정복지의 도서관부터 불사른 예는 허다하다. 세계 최초의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기원전 3세기에 설립돼 다섯 차례 불탔고, 여섯차례 다시 세워졌다. 어느 때는 파피루스 종이로 쓰여진 책과 고문서가 6개월 동안이나 대중목욕탕의 연료로 불태워졌다.


그러나 금세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다시 세워져 동서 문명이 교차하는 지중해변을 밝히고 있다.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도서관 수난사의 상징으로 우리가 지켜야할 '지성'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세종과 정조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고귀한 '꿈의 도서관'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서관은 역사, 문화, 지식, 철학, 사람이 어우러진 유비쿼터스 세상이다. 그래서 모든 이는 도서관에 대해 문화적 접근 권리를 가진다.

여기서 지금 우리는 도서관 하나로 온통 지성이 저울질 당하는 처지다. 바로 국립세종도서관 책임운영기관 지정 논란이다. 정부는 오는 10월 세종도서관 개관을 계기로 도서관 운영시스템의 컨트롤타워인 국립 중앙도서관마저 비영리법인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운영방식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국립세종도서관 책임운영기관 지정, 운영은 물론 국립 중앙도서관 비영리법인화 수순을 숨기거나 부인하지 않는다.


책임운영기관은 관련법률상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통의 행정기관과 형태는 같다. 그러나 운영에 있어서 기관장에게 인사, 조직, 예산 등의 자율성을 부여한 점이 차이가 있다. 또한 기관 운영에 필요한 재정수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자체 확보할 수 있는 사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미 입장은 명확하다. 국립 도서관을 재정 효율성, 경쟁력 강화 등 시장 논리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책임운영기관의 소속 직원은 공무원이며, 책임운영기관의 기관장만 외부전문가를 채용해 성과를 평가하고 책임 있는 운영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가가 도서관을 운영하면 성과를 평가할 수 없고, 책임 있는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분관의 책임운영기관 형태 및 국립 중앙도서관 비영리법인화는 중앙도서관의 구조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관장과 사서들에게 경쟁과 효율의 멍에를 씌우는 것이다. 사실상 도서관 포기정책의 일환으로 읽힌다.
실례로 미국 의회도서관을 보자.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1만6600여개에 이른다. 사설도서관은 12만2000여개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모든 미국도서관 운영 시스템을 관장하는 중앙기관 역할을 한다. 분관으로 법률도서관, 디지털 도서관, 장애인 도서관 등을 두고 있다. 사서만 4000여명이다. 우리나라 출신 사서도 20여명이나 된다. 세계 모든 나라 사람이 사서로 일하기로 유명하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장서가 1억4200만 점으로 우리나라 국립도서관 230만점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서가 길이로는 1046km로 서울-부산을 왕복한 거리에 달한다. 소장자료의 언어는 470여종이다. 관장 역시 정치적 입장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인 위상이 주어진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출신인 역사학자 제임스 빌링턴은 1987년 미국의회도서관장에 임명돼 최근까지 4반세기 동안 일했다. 따라서 관장은 철저히 무당파성을 견지한다.


하지만 국립중앙도서관은 2년마다 바뀐다. 중앙부처 1급 상당의 공무원이 순환보직하는 형태로 근무한다. 도서관 사서 출신이나 명망 있는 전문가가 중앙도서관장을 하는 예는 지금껏 한차례도 없다. 그저 중앙부처 공무윈이 지나쳐가는 자리에 불과하다. 현대 도서관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공공도서관 828개, 사설도서관 4000여개 수준이다. 사설도서관은 작은 도서관 형태로 대부분 동네 사랑방 수준이다. 이들은 전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 한다. 즉 책임운영기관 지정은 국가와 관료가 도서관을 운영해본 결과 방만하고, 성과 없고, 책임질 수도 없고 경쟁력과 재정 효율을 망쳤다는 걸 스스로 폭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OECD 국가 34개국 중 우리나라처럼 재정 효율성, 경쟁력 강화 등을 목표로 한 국립도서관 법인을 운영하는 국가는 없다. 영국, 호주, 에스토니아, 스페인 등이 4개국만이 도서관 법인으로 운영하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와는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다. 이는 오랜 지방분권적 권한에 기인한다. 영국, 호주, 스페인 등은 도서관 운영 및 자료 납본 등을 지방정부 조례에 의해 독자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스페인, 영국, 호주 등이 이에 해당된다.


영연방 국가의 법인 운영 형태는 다원적 도서관 관리를 통합할 필요에 의해 설치됐다. 우리나라의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와 유사한 성격을 수행한다. 에스토니아의 경우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하면서 생성된 관리 형태다. 그러나 모두 사서들은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예산은 국가가 담당한다.


따라서 도서관 업무 성격이나 공공서비스 목적에 비춰 볼 때 경쟁과 재정 효율을 위해 책임운영기관을 별도로 설립, 비영리법인화를 추구하는 것은 정부의 도서관 운영 포기를 뜻한다. 특히 국립중앙도서관 재정자립도가 0.9%에 이르는 상황에서 책임운영기관으로 운영될 경우 도서관 고유 업무가 크게 축소될 수 밖에 없다는 도서관 업계의 주장은 정부 논리보다 더 설득력을 갖는다.


도서관단체들은 "전문가에 의한 서비스 질 향상이 목적이라면 세종도서관의 책임운영기관을 추진하는 대신 직원의 사서비율을 높이고, 전문성과 명망을 갖춘 인사를 개방직으로 채용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맞선다.


나아가 국립세종도서관은 국가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의 분관 형태로 기존 법령이 정한대로 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구조적 지위 또한 국영체제로 더욱 강화해 공무원 및 세종시민에 대한 공공도서관서비스와 더불어 지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며, 효율적으로 제공해야한다는 의견이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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