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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한화의 '뚝심 DNA'…위기 때마다 경영 大결단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42초

내일 창립 60주년 맞는 한화그룹, 위기 때 지르고 자르고 쏘다

석유파동 일던 1980년대···IMF 직전인 1996년···新에너지에 사활건 2012년
29세부터 경영맡은 김승연 회장, 자산 174배·매출 47배로 키워내

60년 한화의 '뚝심 DNA'…위기 때마다 경영 大결단 1955년 당시 한국화약 인천공장 정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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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선태 기자]'글로벌 태양광 1위'라는 새로운 경영목표를 정립한 한화그룹이 9일로 창립 60주년을 맞이한다. 고(故) 김종희 회장이 해방 이후 부산에서 한국화약(자본금 5억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한화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본사를 서울로 이전, 전국 조직 재정비 과정을 통해 조금씩 그룹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한화는 그룹 태동기부터 각종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확장시켜 나갔다. 1964년 1월 한국화약은 기존 주력 사업분야(화약)와는 무관한 신한베아링공업을 인수, 기계공업분야로 다각화를 시작했다. 1968년 전후 한국프라스틱공업 지분율 31.8%로 제 1대 주주였던 한국화약은 법인 통합 후 우풍화학과 제휴해 의결권을 확보,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지배하게 됐다.


1972년 방위산업에 진출한 한국화약은 이후 정밀화학으로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1970년대 말에는 자동화계획이 수립되면서 제품 제조공정도 변화를 겪게 됐다. 1978년에는 방위산업 전문화를 위한 제 2공장(여수공장)을 여수에 신축하고 특수 방산제품을 양산,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특수화약부문의 국내 수요와 제 2공장의 생산제품 및 원료를 충당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60년 한화의 '뚝심 DNA'…위기 때마다 경영 大결단 1959년 당시 인천화약공장 전경.

이처럼 M&A를 기반으로 사세를 확장시켜 나갔던 한국화약은 1981년 7월 창업자인 김종희 회장이 타계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당시 만 29세의 나이에 회장직에 오르며 경영권을 이어받은 김승연 회장이 사업다각화와 성장 위주의 기업경영을 통해 한국화약 계열 기업군을 빠르게 성장시킨 것이다.


60년 한화의 '뚝심 DNA'…위기 때마다 경영 大결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회장 부임 당시부터 김승연 회장은 젊은 나이에 따른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 인수, 경인에너지 내국화,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 명성콘도(현 한화리조트) 인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 2의 창업에 성공했다. 김 회장은 이후에도 1990년대 초 세계화 과정과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상황 속에서도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제 2차 석유 파동으로 석유화학 경기가 크게 위축된 1980년대 초, 적자난에 허덕이던 한양화학과 다우케미컬코리아 인수를 통해 석유화학업 진출을 선언한 한화는 1985년 재계 7위로 부상했다. 창립 40년 만인 1992년 10월에는 한국화약의 명칭을 한화그룹으로 변경했다. 1994년 10월에는 계열사의 상호에 한화를 사용해 그룹 이미지를 통일했고 1995년에는 계열사를 축소해 5개 소그룹제로 개편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한화는 김승연 회장 취임 직전 대비 174배나 총자산이 늘어나는 대성과를 이뤄냈다. 1980년 5846억원에 불과했던 총자산 규모가 지난해 말 102조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매출액 또한 7642억원에서 36조원으로 47배 증가했다. 우리나라 성장의 역사와 함께 한 한화의 성공 스토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60년 한화의 '뚝심 DNA'…위기 때마다 경영 大결단 1980년 인수 직전 다우케미칼 여천공장 전경.


한화는 1996년부터 김승연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구조조정을 과감히 추진한 결과, 재계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기업으로 꼽힌다. 김승연 회장의 사전 대비책 강구 지시가 위기 극복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울러 IMF 외환위기 극복은 2000년대 초반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의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제 2의 창업, IMF 위기를 겪고 난 한화의 사업 전선은 해외로 이어졌다. 지난 5월 국내 기업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 규모로는 역대 최대 금액인 80억달러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 수주가 대표적 사례다. 김승연 회장은 비스마야 프로젝트의 규모, 국가적 이익, 상징성 등을 고려해 중대한 사안으로 판단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고 보고 받으며 관련 회의를 주관하는 등 프로젝트가 최종 수주될 수 있도록 직접 지휘했다.


한화는 향후 그룹 먹을거리를 책임질 사업으로 태양광 사업을 선정했다. 2020년까지 글로벌 1위 태양광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구체적 목표까지 세웠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7월 결심 공판 최후변론에서 “큐셀 인수를 통한 태양광 사업 글로벌화로 국가경쟁력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발언할 정도로 태양광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고자하는 의지가 강했다.


이후 독일 태양광업체 큐셀 채권단이 한화의 큐셀 인수를 최종 승인하면서 한화는 세계 3위 태양광 회사로 도약했다. 한화는 기존 한화솔라원의 1.3GW 셀 생산규모에 큐셀의 1GW 생산설비를 더함으로써 연간 2.3GW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임선태 기자 neoj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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