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공정위 조사 결과 불복해 ISD 제소 가능성 제기..양국 관계 후폭풍 엄청날 듯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삼성-애플 소송전의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이미 삼성전자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애플이 다음 단계로 정부를 ISD에 제소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이다. FTA 체결 당시 '독소 조항'으로 논란을 낳았던 ISD가 삼성-애플 소송전을 통해 현실화될 경우 한미 양국 경제에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닥칠 전망이다.
11일 특허 및 통상 전문가들에 따르면 애플이 국내에서 진행 중인 삼성전자와의 특허 분쟁에서 최종 승리하기 위해 외부 기관에 문제를 회부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한미 FTA의 ISD 조항을 통해서다.
국내에서 삼성전자와 특허 소송전을 진행 중인 애플은 지난 6월 삼성전자의 특허권 남용을 주장하며 공정위에 삼성전자를 제소했고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결국 공정위 제소는 ISD로 가기 위한 전초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ISD는 따지러 가는 행위"라며 "애플이 공정위에서 지면 한국 정부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판단할 수 있고, 그렇다면 ISD를 통해 제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행위가 반드시 기업의 투자 활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걸려면 걸 수 있는 게 바로 ISD"라고 덧붙였다. 송기호 수륜법률사무소 변호사도 "공정위의 조사 결과만으로는 문제삼기 어렵지만 조사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을 때 애플이 ISD로 제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석은 다르지만 결국 애플이 ISD에 제소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물론 ISD 제소를 위해서는 애플이 투자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지만 한미 FTA의 투자자 인정 범위가 상당히 넓게 규정돼 있어서 장애가 될 수 없다는 해석이 더 많다. 애플측도 ISD 제소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삼성-애플의 기업간 분쟁이기 때문에 정부를 겨냥한 ISD 제소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관측하지만 기업간 분쟁이 ISD 제소로 이어진 사례는 많다. 과거 미국 장례식장 소유주가 캐나다 회사 로웬을 상대로 계약 위반 소송을 제기하자 미시시피주 법원 배심원들은 로웬이 5억달러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평결했다. 이후 로웬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ISD를 통해 주정부를 제소했다. 중재 기구는 이를 기각했지만 기업간 갈등이 ISD 제소로 확대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안소영 국제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삼성-애플의 갈등은 특허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특허는 속지주의가 원칙"이라며 "애플이 삼성전자와의 갈등을 ISD로 끌고 가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내 특허 전문가는 "특허 분쟁 대다수가 협상 타결로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애플이 끝장을 볼 생각이 아니라면 사안을 키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분쟁이 심화되고 있고, 특히 한국과 미국에서 나오는 결정은 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업계 일각에서 FTA의 ISD 조항이 논란이 되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 설명☞ ISD는 정부의 정책, 법률적 근거로 외국 기업이 피해를 입었을 때 해당 국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다.
권해영 기자 rogueh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