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폭력도 밥(산업)을 키우는 성장동력인가 ?" 세상을 휘감은 불안, 공포가 호신산업을 키우고 있다. "데모대와 경찰 사이에 마스크 장사가 있었던"게 90년대판 천민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면 '호신장비 시장'의 호황은 2010년대의 다른 표현이다. 일반 시민들이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정당한 권리를 잃고 자구에 나설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불황과 깊은 연관이 있다.
최근 연이은 묻지마 살인폭력은 경제 침체, 공권력에 대한 불신, 소외와 불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사회적 환경이 결국 '호신 장사꾼'들을 육성하고 말았다. 밝고 건강한 사회라면 당연히 없어져야 할 산업(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나쁜 경고음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더욱 수렁에 빠질 경우 총기 소지를 허용하는 사태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달 제주 여성 관광객ㆍ통영 초등생 살해사건으로 반짝 했던 호신용품 시장에는 이달 들어 다시금 찾는 이들이 쇄도하고 있다. 24일 오픈마켓 옥션에 따르면 지난 16∼ 22일까지 최근 일주일새 호신용 스프레이나 경보기 등 호신용품 판매량이 전주 대비 23% 늘었다.
현재 옥션에서 판매되고 있는 관련 상품 등록수도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어나 8000여개에 달한다. G마켓에서도 최근 보름동안 호신용 상품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20% 증가했다. 도어경보기나 무선센서방지기 등 방범보완용품 판매량도 35% 늘었다.
호신용품 중에는 휴대하기 편한 1만원 내외 가격대의 상품을 찾는 수요가 많다. '호신용 스프레이'는 립스틱과 같은 크기로 휴대폰, 열쇠고리 등에 걸어 휴대할 수 있다. 간단히 누르면 액체가 발사되는 분무형 제품이다. 소리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경보기' 등도 인기다.
그 외에도 식물성 최루액이 들어 있는 5만~10만원대 '호신용 가스총', '호신봉' , '전자충격기' 등 고가품도 찾는 이들이 늘었다. 가스총이나 전자충격기 등은 경찰의 소지허가가 필요하다. 개인 호신용을 위해 소지할 수 있는 자격은 만 20세 이상 범죄경력이 없는 자다.
호신용품 판매업체 다물 한정규 대표는 "다른 때보다 확실히 다르다. 매출이 두 배 이상 올랐다"면서 "주로 4만원대 경보기와 스프레이 결합상품이 많이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김성진 현대안전산업 대표도 "휴가시즌엔 하루에 1~2개 정도 파는 수준이었지만 이번 주엔 하루에 7~8개를 팔았다"면서 "요새는 저렴한 스프레이나 경보기 외에도 타인으로 부터 위협을 느껴본 경험이 있는 여성분들이 가스총이나 전자충격기를 구입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상에서 호신용품 판매업체 수도 증가하면서 상품 가격도 내려가는 추세다. 김 대표는 "인터넷에서 가격이 공개되고 경쟁도 치열해져 2~3년 전만해도 20만~30만원대였던 여성용 가스총이 10만원대면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신용품업계는 정확한 시장 규모를 파악하고 있지는 않지만 꾸준한 증가 추세라는데 이견이 없다. 특히 최근의 연이은 묻지마 폭력사태는 호신시장을 큰 폭으로 비약시킬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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