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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⑩]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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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⑩]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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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열림원/ 1만2000원

지난 1월부터 소설가 최인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울주보'에서였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주보 '말씀의 이삭' 부분에 실은 첫 번째 글,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를 시작으로 매주 글을 써 모두 9편을 싣는다고 했다. 정말로 딱 9편이었다. 지난달 26일자 주보에 나온 '주님, 제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여 주소서'라는 글이 마지막이었다.

'그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뭐라도 찾아서 읽어야 했다. 그 때 눈에 띈 책이 바로 '꽃밭'이었다. '글 최인호, 그림 김점선, 꽃밭'이라고 적힌 책 표지가 두려움에 젖은 마음을 달래주는 듯했다.


최인호는 '꽃밭'의 서문에서 "이 책의 제목은 조선 유생 최한경이 지은 연시 중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란 구절에서 빌려온 것"이라면서 "우리들의 인생이란 신이 내려준 정원에 심은 찬란한 꽃들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꽃밭'은 그의 말처럼 '찬란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글 모음집이다. 금주를 하게 된 사연에서부터 노래를 안 하던 아내가 노래를 한 일화, 문학의 위기 등까지.


'꽃밭'의 한 대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나의 소중한 금생(今生)'이라는 글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 갑자기 어제까지 살아왔던 인생의 방법을 모두 잊어버린 사람처럼 어리둥절해지고 당황할 때가 많이 있다…인생이란 짧은 기간의 망명이라고 플라톤이 말했던가…나는 이제 금생에 살고 있다.'


바로 뒤를 이어 나오는 글엔 '꽃반지 끼고'라는 제목이 붙었다. 노래를 한 번도 목청껏 부른 적이 없는 아내에 관한 얘기다.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아내의 성격을 물론 나는 존중하고 있지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목청껏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는 노파심에 나는 일부러 아내 곁에서 큰 소리로 목청을 높여 성가를 부른다.'


최인호를 따라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가장 순수한 우정', '신문이여, 너마저', '소설가의 마지막 소망' 등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고(故) 김점선이 쓴 '그린이의 말'에 다다른다.


김점선은 여기서 이 책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노라고 고백한다. '아프고 나서 기운을 차려 그림을 그리려고 보니까 붓들이 말라 있다…물감들은 뚜껑을 열기조차 힘들게 말라버렸는데 색연필들은 전혀 상관없이 싱싱하게 작동한다…다시 그림 그리기 시작하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는 대목이 가슴을 울린다.


'5년에 걸친 투병생활 중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글을 쓸 수 없는 허기였다' '작가로 죽고 싶지, 환자로 죽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는 최인호의 글을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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