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고무줄 통계'..48兆 '왔다갔다'
[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정부가 집계하는 통계의 기준이 들쭉날쭉해 시장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통계의 기준이 바뀌면서 수십조의 숫자가 더해지거나 사라지는 일도 발생한다. 차제에 통계에 대한 기준과 방법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23일 지난해 2분기 가계부채가 애초 밝혔던 754조9000억원이 아니라 802조8200억원이라고 정정했다. 계산착오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증권회사와 대부사업자 등이 가계에 빌려준 대출금을 합산하기로 '가계신용' 통계 기준을 고치면서 발생한 일이다. 한은이 기준을 고치자 그간 보이지 않던 48조원의 빚이 드러났다. 새 기준으로 올해 2분기 가계부채를 따지면 무려 876조30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정책당국이 헷갈리는 통계로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는 데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6월 "가계부채가 800조원(옛 통계기준)을 넘고 있다"며 은행권의 대출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등의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에 돌입했다. 그러나 새 통계기준으로는 이미 1년 전에 가계부채가 800조원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시장은 그 사이 "진짜 가계부채가 얼마냐"를 두고 당황했다. 한은이 가계신용과 별개로 집계하는 '자금순환표상 개인부문 부채'에는 올해 1분기 기준으로 1006조6000억원이라고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계신용'에 나타난 800조원대(옛 통계기준)의 가계부채와 무려 200조원 넘는 돈이 차이가 났다.
자금순환표상의 '개인'은 가계와 더불어 소규모 개인기업, 소비자 단체, 종교단체까지 포괄하는 데, '가계'와 용어가 비슷해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한은은 결국 이번 개편에서 자금순환통계의 '개인부문' 항목을 '가계 및 비영리단체'로 이름을 변경키로 했다. 박승환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두 통계가 용어는 비슷한데 부채 규모는 달라서 혼선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우리나라 가계부채를 가계신용통계로 단일화를 하자는 목적으로 (가계신용통계를)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똑같은 일이 국가부채를 두고도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과 학자들이 통계기준을 마음먹은대로 바꿔가며 국가부채를 줄이거나 부풀려 발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부채가 300조원에서 1600조원까지 제각각이다.
기획재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국가부채 기준은 국제통화기금(IMF) 방식이다. 현금주의 작성법으로, 이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부채는 392조2000억원(GDP대비 33.4%)이다. 이와 달리 발생주의로 작성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기준에 따르면 국가부채 규모가 GDP 대비 33.9%(2010년 기준)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라 어느 방법을 쓰든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같은 경우 "4대 공적연금, 통화안전증권 잔액, 한국은행 외화부채 등을 포함하면 국가부채가 1637조4000억원(2009년 기준)을 넘는다"고 주장한다.재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국제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항목까지 국가부채로 포함하면 국제비교가 불가능해지고 시장에 과도한 불안감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유동성 공급정책에 따라 이뤄지는 통화안전증권 잔액까지 국가부채에 포함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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