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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활명수,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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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활명수, '역사' 속으로 활명수 변천사. 1967년 까스활명수가 나오면서 원조 활명수의 매출은 급감했다. 좌측 450㎖ 큰 병이 이번에 사라지는 '원조'다(출처 : 동화약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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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원조 활명수가 아름다운 퇴장을 한다. 판매사는 '한정판'을 생산해 우리나라 최고령 의약품을 역사에 남기기로 했다.

1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동화약품은 '까스활명수'의 원조격인 '활명수 450㎖' 병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활명수는 1897년 출시돼 국내 최초의 양약이자 등록상품으로 기네스 공인기록을 가진 제품이다. 1967년 탄산을 넣은 '까스활명수'가 나오면서 '원조'의 매출은 급감했다. 현재는 대형 약국에서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생산이 미미하다.

그럼에도 동화약품이 활명수 생산을 지속한 것은 현재의 회사를 있게 한 상징성 때문이다. 최근 1년 생산량은 약 40만병에 연매출도 10억원 가량에 불과해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다. 반면 까스활명수는 1년 생산량이 약 1억병, 연매출도 400억원에 달한다.


원조 활명수가 꼭 필요한 곳도 있다. 일부 사슴농장이 그런 곳이다. '사슴 피'를 날로 마신 후 비위가 상했을 때 활명수가 제격이라고 한다. 흔한 건 까스활명수 75㎖지만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조금 부족해 450㎖ 원조 활명수를 비치해 놓고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한편 동화약품은 450㎖ 원조 활명수 생산을 중단하는 대신 이를 75㎖ '새 버전'으로 출시하고 원조 모양은 한정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병 모양과 크기가 와인병과 비슷해 선물용 와인처럼 고급포장을 만들기로 했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란 뜻의 활명수(活命水)는 1897년 궁중에서 쓰이던 생약 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자 양약이다. 동화약품이 활명수를 팔아 얻은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댔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 오랜 역사와 인기만큼 유사 제품도 많이 등장했다. 활명회생수, 활명액, 생명수 등 60여종의 유사 제품이 난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화약품은 1990년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문구로 브랜드 차별화에 나서기도 했다. 제품 인지도가 무려 97.7%에 달하는 기록도 갖고 있다. 지금까지 팔린 활명수는 총 81억 병에 달한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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