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4개영역 강남 제치고 1위
교수도 마을 주민 '지속지도'
[아시아경제 황석연 사회문화부장] 몇 해 전 전남 곡성군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는 폐교를 활용해 방과후 학원을 만들려고 했다. 군립 학원인 셈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가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한 군수는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이곳에 모아두고 학원 강사들까지 불러들여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자 했다.
잘될 것 같던 이 사업은 며칠 못 가 암초를 만난다. 교원노조의 일부 교사들이 점거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군청까지 나서서 학원을 운영하는 것은 공교육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보다 못한 군수가 농성 중인 교사들을 찾아가 두 가지를 질문했다. 곡성에 근무하는 교사 중에 집이 광주에 있는 분은 손을 들어달라고 했다. 또 한 가지. 도시에 사는 교사 중에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교사도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곡성군수가 군립 학원을 만든 이유가 이것이라는 지적을 하자 교사들은 하나둘씩 농성을 풀고 집으로 돌아가더라며 군수는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흑인이 많이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의 도심에 첨단 기술을 동원해 '기숙학교'를 지어 주었다. '빌 게이츠'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게이츠 재단을 통해 '기숙형 고등학교' 사업에 2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시카고에 100여개, 뉴욕에 200여개의 새 학교를 지어주는가 하면 오클랜드, 밀워키, 클리블랜드, 보스턴 등 주로 대도시에 500여개의 소규모 기숙학교를 지어주었다. 이들 기숙학교는 교장을 공모하여 뽑고 교장에게 교사를 채용할 수 있는 전권을 주어 학교장 책임 아래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게이츠는 고등학교의 규모가 작아야 엄격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생이 교사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도를 받을 수 있으려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학교에 머무는 동안 즐거워야 하고,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에게 관심을 쏟아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학교 안의 공동체 생활을 도와주는 '기숙학교'였다. 영국의 이튼스쿨이나 한국의 민족사관학교처럼 세계적인 명문 고교는 모두 '기숙학교'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기숙사가 갖추어진 작은 학교는 학생의 학습 동기를 높여주고 출석률을 끌어올리며 안전감을 준다. 따라서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과거 대도시의 슬럼화 된 학교에서는 50% 이상이 중도탈락률을 보였지만 이 소규모 기숙학교에서는 중도탈락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했다. 높은 입학경쟁률과 함께 많은 학부모와 학생이 선망하는 학교가 됐음은 물론이다.
빌 게이츠가 교육지원의 초점을 이렇게 고등학교에 둔 이유는 이 시기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갈림길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엊그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1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결과를 분석해 발표했다. 전남 장성고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모두 학교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다. 옆에서 돌보면서 가르칠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학교 철학에 따라 개교 때부터 유지된 원칙이라고 한다. 기숙학교라는 사실도 눈에 들어온다. 학생이 선택해 공부하는 방식으로 1학년 때는 평균 3~5등급에 머물던 학생이 고3이 되자 1등급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논두렁 한가운데 있는 이 학교가 언어, 수리, 외국어 등 4개 영역에서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을 제치고 전국 수위에 올랐다.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방과후엔 골프와 포켓볼까지 도입한 학교다. 전남 장성고에는 전국에서 초등학생들까지 입학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곡성 군수와 빌게이츠처럼 장성고가 해낸 이 일을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가 어떻게 벤치마킹할지 궁금하다.
황석연 사회문화부장 sky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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