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김승우의 웃음소리는 호탕하고 따뜻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넉살 좋게 다가가는 여유와 푸근함이 공존했다. 1시간의 인터뷰에서도 20년간 연기를 해온 베테랑 배우의 성실한 나이테를 감지할 수 있었다.
김승우가 영화 '나는 아빠다'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일본 영화 '컬링 러브'를 제외하면 5년여 만의 단독 주연 영화다. "우정출연이 애정출연이 됐다"는 '포화속으로'에 1년 만에 이어지는 이 영화는 비리형사가 심장병을 앓는 딸을 살리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극단적인 상황을 그린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승우를 만났다. 그는 "드라마의 구조가 좋아서, 절절한 악역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연기자로서 20년 살아오지만 여전히 위기감과 긴장감을 느낀다는 김승우는 삶의 향기를 이야기할 줄 아는 배우였다.
- 소리 소문 없이 제작돼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 '포화속으로' 개봉하고 나서 지난해 여름부터 찍기 시작했다. 개봉이 갑자기 잡혀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 5월쯤 예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4월에 개봉한다는 말을 들었다. 제목은 크랭크인하는 날부터 2개였다. '나는 아빠다'와 '나쁜 아빠'. 이 영화 제작보고회 하는 시점에 갑자기 '나는 가수다'가 크게 화제가 돼서 '이건 뭐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하.
- '나는 아빠다'는 '아저씨'의 아빠 버전이라는 말도 있다.
▲ 아무래도 딸 역할로 나오는 (김)새론이 때문일 것 같다. '아저씨'가 개봉하기 전에 출연한 건데 촬영 끝날 때쯤엔 새론이가 아주 유명해졌다. 이 영화에선 새론이 분량이 많지 않다. 거의 누워 있는 장면이 대부분이어서, 새론이는 "내면 연기하기 좋았다"고 하더라. 누워만 있으니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 2006년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해변의 여인' 이후 오랫동안 영화 주연작이 없었다.
▲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크랭크인 날이 첫 아이가 태어난 날이었다. 촬영을 미루고 서울 올라와서 아이 옆에 있다가 다시 내려갔다. '해변의 여인'까지 촬영하면서 아이 옆에 많이 있어주지 못했다. 둘째 아이가 2008년생인데 그때는 아이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2007년과 2008년엔 그래서 일부러 연기를 안 했다. 처음엔 의도적으로 쉬었는데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일이 끊겨 있었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영화 시나리오도 드라마 출연 제의도 없었다.
- '배우 김승우'에게 출연 제의가 전혀 없었다고?
▲ 마음에 차는 작품은 하나도 제의가 없었다. 그땐 약간 당황했다. '앞으로 일을 못하게 되는구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아내(배우 김남주)도 출산 때문에 드라마 섭외도 없고 일이 다 끊겼던 상황이었다. 2년간 둘 다 수입이 없었다.
- 톱스타 부부에게 일이 없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 어이가 없었다. 우리가 20대 중후반이나 30대 초반이었으면 그런 일이 없었겠지. 둘 다 40대이다 보니 짧은 공백에도 그렇게 됐던 것 같다. 아내도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우리 둘 다 컴백한 드라마가 그 사람은 '내조의 여왕', 난 '아이리스'였는데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아이리스' 때는 '미친 존재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 '미친 존재감'이라고 하기에 나는 처음에 욕인 줄 알았다. 하하. 신인 시절 처음 연기할 때는 선배들이 종종 영화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의 뒷모습 신에 대해 말을 많이 했다. 그때는 '서 있는 것만 갖고 뭐가 나와?' 그러면서 웃기는 선배들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그 말뜻이 뭔지 알겠더라. 손의 미세한 떨림 하나, 뒷모습만으로도 연기하는 게 뭔지 알게 됐다.
-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에 출연한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 처음 캐스팅됐단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 나와 고현정이 나온다니 웃겼나보더라. 내 입장에서는 틀을 깨는 도전이었다. 마흔에 가까워질 무렵까지 무대연기를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드림걸스'로 뮤지컬 장르에도 도전해보게 됐고 이번 영화도 악역인데 새로운 도전이다. 토크쇼 '승승장구'도 내겐 새로운 도전이다. 새로운 모험의식을 갖게 되면 작업하는 과정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계속 도전하고 모험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 멜로 연기를 피했던 이유도 그 때문인가.
▲ 예전에는 멜로 장르의 작품들을 진저리나도록 많이 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매너리즘에 빠지듯 배우도 마찬가지다. 그땐 더 이상 멜로 연기를 안 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영화 '남자의 향기' 이후였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도 웬만하면 멜로를 피했다. '아이리스'에서도 김소연 캐릭터와 멜로 라인이 있었는데 빼달라고 했다. 이제는 내 나이에 맞는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워렌 비티가 나이 들어서 한 연기 있잖나. 다음 작품인 드라마 '리플리'가 그렇다. 40대 남자와 20대 여자의 무게 있는 사랑 이야기다. 원래는 '강력반'에서 강한 남자를 보여주고 '리플리'를 하려고 했는데 체력적으로 안 돼서 결국 '강력반'은 포기했다.
- 결혼 후 연기가 훨씬 깊어졌다.
▲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 아이가 커 갈 때까지는 직업적으로도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연기한 부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10~15년 전만 해도 내가 한 것의 성과물에 대한 결과가 좋지 않을 땐 남 핑계 대기 바빴다. 지금은 무조건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말 한마디도 더 신중하게 하게 되고 말 한 번 할 때마다 생각을 더 하게 된다. 연기도 그런 것 같다. 전엔 한 가지만 생각하다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하는 걸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 결혼 후에 연기에 대한 욕심이 더 많아진 것 같다.
▲ 지금까지 일일드라마나 50부작 주말드라마를 한 번도 안 했다. 드라마는 미니시리즈만 했다. 영화와 방식이 비슷하니까. 50부작 드라마를 안 한 건 '생활연기자'가 될 것 같아서다. 카메라 3대 세워놓고 그 안에서 대사만 외워 연기하는 건 새로운 게 나올 수가 없다. 욕심이 있다면 생활연기자가 되지 않고 은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젠 미니시리즈 할 나이의 한계선에 이른 것 같다. 하하.
- 연기가 더 좋아지면서 운도 따르는 것 같다. 드라마건 영화건 토크쇼건 다 잘 되고 있다.
▲ 고마운 일이다. 정말 운이 많이 따르는 것 같다. 난 늘 배우가 불쌍한 직업이라고 항상 말한다. '저요, 저요' 하고 손든다고 연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늘 선택받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시점에 늘 기회가 제공되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난 운이 좋은 셈이다.
- 예능 전문도 아닌데 토크쇼 '승승장구'가 정말 승승장구하고 있다.
▲ 그건 기적이다. 하하. 아마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1년은 못 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벌써 1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비판적인 기사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좋은 기사도 많이 나온다. 작가들이 그걸 보고는 '욕하고 또 욕해도 안 끝나니까 기자들도 할 말이 없나 보다'라고 말하더라.
- '승승장구' 진행은 언제까지 하고 싶나.
▲ 회사에서 허락하는 한? 하하. 처음에는 6개월만 할 거라고 생각하며 들어갔다. 배우로서나 인간적으로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출연하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한 사람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성공해서 실패했던 사람들이 아닌가.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배우로서 간접 경험이 되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한 오래 하고 싶다. 지방 로케이션이 긴 작품에 들어가면 그만둘 수도 있고.
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 k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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