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공수민 기자]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7일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단계 강등하면서 일본 열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는 그리스, 아일랜드에 이어 다음 위기국으로 지목된 스페인보다도 낮은 등급이다. 이날 S&P는 정부의 정책 일관성 부재와 추진력 잃은 집권당 그리고 막대한 국가부채가 향후 예상보다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를 이유로 지난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일본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막대한 국가부채= 일본의 국가부채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미국(98.5%)이나 독일(81.3%) 수준을 크게 웃돌 뿐 아니라 재정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136.8%)와 아일랜드(112.7%)를 상회하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저축률이 높아 방만한 재정운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저축률은 줄어들고 있다. 또 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일본 정부의 세수는 줄어드는 반면 사회복지비용 지출은 급증하고 있다. 오랜 경기부진과 디플레이션 그리고 막대한 사회복지예산도 문제다. 일본의 사회복지 관련 예산은 올해 예산안의 31%를 차지하고 있다.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나랏빚은 더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간 내각은 세제개혁과 사회복지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자민당 등 야당의 도움없이는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데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
◆추진력 잃은 집권당..적자감축 어려워= S&P는 일본의 큰 문제점으로 집권당이 정책 추진력을 잃어 막대한 재정적자를 줄이기 어려운 상황을 지적했다.
올해 1조5000억달러로 역대 최대의 재정적자를 기록할 전망인 미국에 대해 일본보다 낫다고 평가한 것도 바로 재정적자를 억제하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은 총 44석으로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책 수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정책 추진을 위해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S&P는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집권당이 장기 경기침체를 해소할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유권자들은 주요 선거때마다 새로운 목소리를 찾아 지지당을 바꾸고 있다. 무능한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의회 분열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간 총리는 지난해 6월 현 5%인 소비세를 인상하는 계획을 밝히고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의회의 지지를 얻을 것이란 전망은 어둡다.
일관성 없는 정책도 문제다. 지난해 6월 간 내각은 70%에 육박하는 지지율과 함께 출범했다. 그러나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비세 인상을 언급하면서 참의원 선거를 참패로 이끌었다. 오는 2013년 선거때까지 세금을 동결하겠다는 정책을 뒤집으면서 민심이 떠난 것이다. 간 내각의 지지율은 출범 6개월만에 사상 최저 20%대로 추락했다.
◆본격적 긴축 시급= 정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일본 정부는 뚜렷한 적자 긴축 계획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2년 연속 빚덩이 운영을 결정했다. 그리스와 아일랜드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긴축에 나서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적자감축 정책 추진을 위해 여당과 야당의 협력이 필요한 때다. 부채를 줄이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부채를 줄이지 않는다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최근에는 일본 내부에서도 소비세 인상 등 세제개혁을 통해 부채 감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2일 일본의 대표적 경제단체인 경제동우회는 "세금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일본이 붕괴될 것"이라며 "소비세율을 2017년 17%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수민 기자 hyun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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