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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윤증현 "우린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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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사랑하는 기획재정부 가족 여러분
G20 정상회의를 유치했을 때, 그러니까 지난해 9월입니다.
“중매 보자마자 기저귀 장만하는 셈”이라고 흉볼 지 모르지만, 우린 유치와 동시에 서울선언의 큰 그림을 준비해야했습니다. 마음이 정말 바빴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잘 아다시피 모든 의제에서 이해가 충돌했습니다. 회의체의 지속적인 추동력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우리는 각국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이해를 조정하고, 상생의 공약수를 찾아내 중재하고, 높은 수준의 원칙과 결단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G20 정상들은 ‘강하고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의 경로(經路 ? Path)와 그 실행계획’에 합의했습니다. 우리의 리더십으로 디자인한 경로입니다. 우리가 중재하고 조정해 만든 글로벌 내비게이션입니다. 건국이후 처음입니다.

기획재정부 직원 여러분
“새로운 경로의 내구연한(耐久年限)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다가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란 용어를 떠올렸습니다. 여러분도 영화에서 많이들 봤겠지만 옛날 로마군 마차는 말 두 마리가 끌었습니다. 유럽을 정복한 로마군은 당연히 마차의 폭, 즉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에 맞춰 유럽의 도로를 정비했습니다. 이 도로가 마차선로로 발전합니다. 열차가 발명되면서 마차선로는 열차선로가 됩니다.
로마군 마차의 폭이 열차선로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차의 폭은 현대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로켓의 지름을 결정합니다. 로켓이 열차를 통해 발사대로 운반되니만큼, 로켓 지름이 터널의 폭 보다 넓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신 로켓의 지름이 2천년전 로마군의 마차로부터 시작된 ‘도로 발전 경로’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이를 경제학에선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 부릅니다.


경로의존성은, “한번 경로가 만들어지면 얼마나 오랫동안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 지”와 “옳든 그르든 과거의 경로를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경로가 한번 정해지면 리셋(Reset) 버튼을 누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왜 “기존의 경로를 따르는 룰테이커가 아니라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룰메이커가 되어야하는지”도 잘 설명해 줍니다.


지금 우리는 지구촌의 미래에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칠 새로운 경로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그 경로를 선진국 및 개도국과 함께 가고, 앞장서 가고, 북돋우며 갈 것입니다. 그래야 멀리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사랑하는 재정부 직원 여러분
“창을 베고 누운 채로 아침을 맞는다”(枕戈待旦?침과대단)란 말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G20을 유치한 그날부터 지난 1년여간 갑옷을 벗지 못한 채 야전에서 전투태세로 보낸 느낌입니다. 보통은 에너지의 7~8할을 쓰고 2~3할은 비상용으로 비축해두는 기분으로 일하는데 그동안은 정말 많은 날 저녁이면 기진(氣盡)하곤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러면서도 아침이면 낯설고 새로운 힘이 몸에 가득 채워졌습니다. 아마 “당대의 과제를 당대의 방식으로 풀어야한다는 책임감”과, “지금의 이런 노력이 반영된 10~20년후 한국경제의 위상을 상상해보면 나오는 엔돌핀”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도 매한가지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재정부 직원 여러분
고생했다는 말 바로 뒤이어 더 높은 업무강도를 주문하자니 참 민망한 심정입니다.
먼저 예산안, 세제개편 등 각종 법안,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경제정책과제, G20 후속조치, 2011년 경제운용방향 등을 여러분 업무의 우선순위에 놓아주기 바랍니다.


특히 예산의 경우, 당장 좋다고 농부가 씨앗을 삶아 먹거나 소를 잡아먹으면 안되듯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늘 고려해주십시오. “손끝이 거름”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 손이 많이 간 논밭은 거름 많이 친 것 만큼이나 기름지다는 말입니다. 국회에 많이 가서 부지런히 설명하고, 반듯한 논리로 대응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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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직원 여러분
벌써 바람에 날이 서고, 아침엔 살얼음이 잡힙니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화되다보니 “건강 챙기라”는 말을 하기도 민망합니다만 환절기 건강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저의 밑천이자 제 자부심인 여러분을 향해 다시 한번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늘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2010. 11. 16
윤증현 드림




박연미 기자 chang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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