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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성공지도 日 실패에서 찾아라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최고를 만드는 성공 요인이 반드시 그 자리를 지키게 하지는 않는다.'


지난 1980~1990년대 글로벌 시장을 휘어잡았던 일본 기업의 실패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미 경제전문지 <포천>이 매출액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일본 기업의 비중은 15년 전 35.2%에서 지난해 11.2%로 급감했다. 일본 기업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운 것은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기업이다. 15년 전 500대 기업의 1%에도 못 미쳤던 브릭스 비중은 지난해 10.4%로 증가하며 일본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 9월호는 일본 기업의 실패 요인 5가지를 제시하고, 이머징의 공룡기업 역시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아야 성공가도를 지속할 수 있다고 전했다.


◆ 해외서도 일본식 고집 = 일본 기업은 거대하면서 변화가 미미한 국내 시장의 특성을 발판으로 규조의 경제효과와 저비용-고품질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 같은 효율성은 기업의 강력한 정책과 결속력, 지배구조로 이어졌고 수출시장에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창출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수출 성공에 국한됐다. 국내 및 수출 경쟁력이 자회사 설립을 통한 해외 안착에는 '독'이 됐던 것. 일본 기업은 해외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국내 시장에서 성공한 방식을 그대로 접목했다. 해외 자회사를 설립할 때 철저한 현지화가 아닌 '우리식'을 고집하다 '쓴 맛'을 본 셈이다.


2000년 전후 샤프와 파나소닉, 후지쯔, 도시바가 해외 휴대폰 사업에 진출했다가 실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소니는 에릭슨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둬 대조를 이뤘다.


◆ 우물안 개구리 = 일본 기업은 수십년간 해외 경쟁사의 위협을 거의 받지 않았다. 1970~199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인직접투자(FDI)가 -0.2~0.3%에 그친 데서 일본 시장이 얼마나 고립돼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고립은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에 커다란 걸림돌이 됐다. 수출을 통해 얻은 노하우로는 해외에 진출해 쟁쟁한 현지 기업들을 이기는 통찰력을 얻기에 역부족이었다.


일례로, 노무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금융회사지만 뉴욕과 런던에 진출했을 때 JP모건이나 UBS에 대적할 만한 경쟁력이 없었다. 기업 인수합병(M&A)을 포함한 주요 사업 부문에서 해외 경쟁사만큼 전문 인력과 전략을 확보하지 못한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했던 셈이다. 노무라는 해외 시장에서 의미있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까지 십수년을 고전했다.


◆ 말 잘듣는 종업원 = 규격화된 제품을 정해진 공정에 따라 생산해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고 결함을 줄이려면 종업원이 동질적이고 유순할 때 유리하다. 일본 노동자의 특성은 첫째도, 둘째도 동질성이다. 이민 인구의 비중도 낮고 지역 사투리도 심하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강성 노조가 버티는 것도 아니다.


경영 방침에 늘 우호적인 종업원에 길들여졌던 일본 기업은 해외 시장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국내와 달리 이질적이고 때로는 과격한 현지 노동자를 통제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희롱 발언을 포함해 국내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제도적, 문화적 차이도 일본 기업의 해외시장 안착에 적잖은 걸림돌이었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지난 1998년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미국 일리노이주 생산라인의 여직원 300여명에게 3400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한 바 있다.


◆ 내국인 일색 경영진 = 일본 기업이 강력한 기업 문화와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데는 결집력과 동질성이 강한 리더십이 한몫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일본 최대 수출업체였던 미쓰시타 일렉트릭의 경우 당시 고위 경영진이 모두 일본인이었고, 미쓰시타에서 잔뼈가 굵었다. 심지어 출신 대학도 대동소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2009년 포천의 500대 글로벌 기업에 포함된 68개 일본 기업의 경영진 가운데 일본인이 98%에 달했다. 지난 20년간 해외 전문가에게 기업 경영을 맡긴 기업은 닛산과 소니뿐이다.


사실 이같은 문제가 일본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기업 리더십의 다양성 결여가 치명적인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까르푸는 스페인과 브라질, 포르투갈, 홍콩, 한국, 대만 등 세계 각국으로 진출했지만 각 지역의 고위 경영진은 모두 프랑스인이었다. 까르푸는 해외 시장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대부분 지역에서 사업을 철수하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하버드비즈니스는 해외 매출 비중이 50%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의 외국 출신 고위 경영진이 25%를 밑돌 경우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버드비즈니스는 해외 시장에서 일본 기업을 패배자로 만든 주요인이 브릭스 기업에서도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브라질과 러시아, 중국의 기업 고위 경영진이 거의 모두 자국인이라는 것. 러시아는 국내 시장의 고립이라는 측면에서 일본과 닮은꼴이고, 인도와 중국은 '내 방식'을 고집하는 점에서 흡사하다.


글로벌 시장의 '공룡'으로 부상한 브릭스의 기업이 앞으로도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한 가지, '유비무환'.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사전준비는 필수다.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지만 일단 바깥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보자는 식의 무리수는 실패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될 성 싶은 떡잎을 찾아 오랜 기간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 가령, 펩시코는 경영자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적인 자질을 갖춘 직원들을 해외에 파견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글로벌 리더십을 기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박선미 기자 psm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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