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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약 먹기 거부하는 제약사 사장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한 중소 제약사 사장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정부 정책이 외국계 제약사 배만 불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기자들은 바로 호응했다. 정부를 비판해 기업을 돕고 외국기업을 견제한다는 논리는 많은 언론의 구미를 당겼다.


때마침 최근의 의약품 유통 현황을 정리한 증권사 리포트가 쏟아져 이 논리를 뒷받침 했다. 상위 제약사는 매출액이 5% 정도 하락했는데, 주요 외국제약사는 0.2% 증가했다. 출처가 다른 통계치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이렇게 정부 정책은 국내사의 피해, 외자사의 반사이익으로 중간 평가돼 버렸다.

하지만 이 논리는 틀렸다. 같은 기간 상위 제약사를 제외한 나머지 중소 제약사의 매출액은 평균 5% 가량 증가했다. 정리하면 리베이트를 금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정책에 상위 제약사는 '몸 사리기'에 들어갔다. 호랑이가 사라진 시장에서 작은 여우들은 공격적 영업을 통해 과실을 따먹었다. 외국 제약사의 반사이익도 없진 않겠으나 그 폭은 크지 않았다.


현재 진행되는 각종 정책은 제약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염두에 둔 것이다. 때문에 평가도 좀 더 오래 지켜본 후 나와야 한다. 일시적이거나 우연에 의해 벌어진 일로 그 영향을 가늠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산업의 체질을 발전적으로 개선하려는 정부 정책의 취지는 기본적으로 옳지만, 그 중 일부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논의는 이를 가려내는 일에 집중돼야 한다. 당장의 매출 손실을 빌미로 정책 전반을 부정하려는 업계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앞서 거론된 사장은 이 판국에도 20%가 넘는 매출액 신장을 기록한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국내사의 매출 손실이 외국으로 갔다면, 그의 회사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제약사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말 중 '부작용 없는 약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부작용 있는 약이라도 먹어 병을 치료하는 건 앞으로 살 날이 더 남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장사 하루 이틀 할' 회사가 아니라면 정부가 주는 약이 비록 입에 쓰더라도 먹고 병을 고쳐야 한다. 일부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말이다. 약 먹기를 거부하는 제약회사 사장의 푸념은 이해하기 힘들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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