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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의 건축외전⑦]자연을 품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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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의 건축외전⑦]자연을 품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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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눈물


이번 겨울에도 이상기후의 징후는 많았다. 폭설과 폭염, 폭우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이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Documentary) 작품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북극의 눈물’은 기후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북극의 삶과 자연을 생생히 보여준다. 매년 높아지는 기온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는 빙하는 극지 환경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던 얼음평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은 다가올 지구 온난화 문제의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양승열의 건축외전⑦]자연을 품은 풍경 청송 성천댁, 경상북도 청송군 소재, 중요민속자료 제172호로 좁은 처마 사이로 난 중정이 유명하다. ⓒ박정연


이후 야심차게 준비한 후속작인 ‘아마존의 눈물’은 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미지 세계와 그 안에서 공존하는 원주민의 삶은 흥미롭다. 터를 잡은 곳에 나무와 풀을 얽어서 몸을 맡길 뿐 과하게 욕심내지 않는다. 미개인(未開人)이라 치부했던 그들의 삶은 먹을 만큼만 수렵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자연계 그대로의 삶이다.

[양승열의 건축외전⑦]자연을 품은 풍경 아마존의 눈물, 김진만 + 김현철 감독, 문화방송 제작, TV 다큐멘터리의 인기에 힘입어 극장판이 제작되었다.


기획자는 의도한 듯 불편한 진실을 여과 없이 각 가정으로 전달했다. 도시문명의 침투로 생태계가 무너지는 충격적인 사실은 밀림이 불타는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매년 경기도 면적의 크기가 사라지는 아마존의 현실은 방안에 앉아있는 나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이기적인 도시문명의 무분별한 개발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에 따른 환경파괴의 짐을 대신지는 그들에게 우리는 누구인가?


자연과 건축


자연(自然)의 뜻풀이는 한자에서 제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 스스로 생성되어 늘 그렇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즉 사람의 어떠한 힘도 더해지지 않은 순수한 환경을 말한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사람의 힘으로 지어지는 건축은 태생적으로 자연에 반하는 활동이다. 근대이후 콘크리트와 유리로 지어지는 건물은 도시화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건설되었다. 합성재료로 마감된 실내외 장식은 폐기처분이 불가능한 수준이며, 자본논리는 자연보다 우선시 되었다.


최근에 신재생에너지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말이 미디어의 일면을 장식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연과 환경에 대한 대책이 시대의 화두인 셈이다. 오늘날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며 전체 에너지의 70% 가량을 소비하고 있다. 이 내용은 에너지 과소비가 산업보다 도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건축가 김석철 선생은 ‘세계 인구의 5%가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25%를 쓰는 서양 도시의 길을 따라가면 인류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확언한다.


서울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는 도시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구 천만의 대도시에서 자연과 공생하는 건축물은 얼마나 찾을 수 있는가?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건물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우리의 옛 건축을 통해 자연과 공존하는 의미를 찾아보려는 통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흔히, ‘자연스럽다.’라고 표현하는 민가를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찾아볼 수 있다.


한 칸의 뜰집


한국 주거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배치 방법으로 ‘ㅁ’자형 주거가 있다. 특히 영남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며, 건물로 둘러싼 안마당이 특징이다. 대개의 경우 안마당을 둘러싸기 위해 규모가 크기 마련인데, 경북 청송에 소재하는 성천댁은 측면 3칸의 아담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양승열의 건축외전⑦]자연을 품은 풍경 청송 성천댁 본채 평면도, 김화봉 작성, 안마당을 중심으로 건축물이 둘러앉았다.


말쑥하게 잘 보존된 ‘ㅁ’자형 양반 고택보다 성천댁이 생각난 이유는 짜임새 있는 구성 때문이다. 작은 건물 안에 사랑채와 안채, 대청, 정지(부엌의 방언), 마구간이 같이 있을뿐더러 이 구성의 중심에 마당을 내었다. 안마당의 크기는 가로 세로 약 3~4m 정도로 손바닥만 하다. 이로 인해 ‘한 칸의 뜰집’이라 부르며, 가장 작은 안마당을 가진 집으로 설명되고 있다.


[양승열의 건축외전⑦]자연을 품은 풍경 청송 성천댁, 작은 처마 틈사이로 환한 빛이 들어온다. ⓒ박정연


이 작은 마당위로 한옥 특유의 처마가 드리워져서 하늘로 열린 구멍은 더 작아진다. 실제 폭은 60cm나 될까? 한눈에 들어오는 안마당으로 빛과 그림자가 극렬한 대비를 이루며 하얀 햇살이 들어온다. 건축물의 중심 공간에 빛이 들어옴으로 시간에 따라 각 방을 밝히는 조명이 된다. 마치 ‘뜰집’의 원형을 보는듯하다. 처마 아래 자갈을 깔고 작은 석물(石物)들을 두었다. 떨어지는 빗물을 풍취(風趣)있게 받아낸다.


[양승열의 건축외전⑦]자연을 품은 풍경 청송 성천댁, 대청마루의 나무문을 열면 빛과 바람이 그대로 들어온다. ⓒ박정연


대청마루에 올라 뒷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느즈막한 오후의 볕이 든다. 집이 동향으로 앉은 탓에 점심이 지나면 중정의 볕이 약해서이다. 대청에 대자로 누워 즐기는 뜰 풍경은 이내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양승열의 건축외전⑦]자연을 품은 풍경 청송 성천댁, 방 한편 뚫어놓은 봉창은 그대로 조명이 된다. ⓒ박정연


중정으로 빛을 받아들여도 북쪽 방은 빛의 사각지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큰 문을 내어 해결하지 않고 작은 봉창을 만들었다. 채광을 위해 벽을 뚫어서 만든 봉창은 창틀 없이 벽 안쪽에 종이를 발라 은은한 빛을 받아들인다. 필요한 만큼 내어 쓸 뿐 과한 법이 없다.


자연을 품은 풍경


도시에서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모른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가격으로 매겨지는 도시이다. 면적이 좁다며 아파트 발코니는 거실이 되고, 대부분 방안에 놓아둔 화분 몇 개로 위안을 삼는다. 실내를 쾌적하게 하기위한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는 없는 집이 더 적다.


[양승열의 건축외전⑦]자연을 품은 풍경 청송 성천댁, 작은 중정은 집안으로 소우주를 담는다.ⓒ박정연


우리의 옛 건축은 작을지언정 중정을 두어 햇빛과 바람과 비를 일상의 풍경으로 받아들였다. 풍부한 일조량은 거실을 밝게 만든다. 그래도 어두운 곳은 봉창을 내었다. 배산임수(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치)로 아침에는 들바람이, 저녁에는 산바람이 내려온다. 대기의 흐름을 이용하여 실내를 쾌적하게 하는 것이다. 내리는 비는 흙바닥 아래로 스며들고, 모여진 빗물로 텃밭을 가꾸었다. 비라도 오는 날은 오롯한 풍경을 만들어 생활을 운치 있게 만든다.


[양승열의 건축외전⑦]자연을 품은 풍경 청송 성천댁, 대청 아래 나무 디딤판을 두었다. 고무신 한 켤레를 빼고 나면 모두 자연에서 온 것이다.


돌과 나무와 흙으로 빚은 집은 모두가 자연재료이다. 건강한 자연이 사람에게 해로울리 없다. 나무로 만든 집은 내구성이 약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천댁은 어림잡아 200년은 넘은 집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주인 내외가 살며 손님이 머물다가 간다. 재료의 특성상 화재에 약한 것은 사실이나 구조의 문제는 아니다.


좋은 사례 하나가 자연과 공존하는 건축의 모든 해결책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선조의 지혜에서 우리시대에 받아들일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이유가 있다. 전통 계승의 의미가 그 모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 건축은 사는 동안 자연을 품고 함께 호흡했으며, 수명이 다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아마존은 개발과 자연에 관한 문제를 우리시대에 꼭 풀어야할 숙제라고 말한다. “지금 아마존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로 다큐멘터리는 끝을 맺는다.


사진 출처
아마존의 눈물 : http://www.imbc.com






양승열 painter_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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