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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세종대왕의 분노

시계아이콘02분 12초 소요

글 쓰는 사람들은 항상 세종대왕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글이 맞춤법에 맞을까”하는 문제와 “얼마나 글 값을 받을까”하는 현실에서 말입니다. 한글을 만든 분이 왜 1만원 권 화폐의 모델이 되셨는지...



어제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브랜드위원회의 1차 보고대회에서 구체적 추진과제로 제시된 3가지가 세종학당과 태권도와 시민의식으로, 그 첫번째 과제가 '세종학당'이었습니다. 한국어 보급 확대와 세계화를 위해서 현재 문화부와 교육과학기술부와 외교통상부 등으로 정책기관이 나뉘어 있는 것을 통합하여 브랜드화 시키자는 사업입니다. 한마디로 한글교육을 통해 한국을 알리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35위권의 우리 국가브랜드를 향상시키기 위해 한글교육과 세계화가 그렇게 시급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가깝게 최근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부는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권과 중국, 러시아 등을 봅시다. 한글학습 붐은 한류 드라마의 인기와 한류가수들의 매력과 한국산 전자제품의 인기에 편승한 측면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글을 배우는 것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일 뿐 우리 국가 브랜드가 상승해서가 아니란 사실입니다. 드라마 제작 테크닉과 국산 IT제품의 디자인과 성능이 국가브랜드를 잠시 끌어올렸을 뿐이죠. 통계상으로도 한글은 외국인들이 배우고 익히기엔 영어나 중국어보다 훨씬 어려운 문자로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 실용적인 면에서도 배워봐야 기껏 5000만 인구하고만 대화가 통하는 문자를 오랜 세월 투자해서 배울 이유가 없겠지요.



우리 사회 역시 한글은 몰라도 영어를 잘하면 훨씬 대접을 잘 받지 않습니까. 도심지 간판들과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 주유소 간판 걸친 옷과 질주하는 자동차를 보십시오. 버젓한 한국산인데도 한글을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한국대표기업들이 국내에서조차 SAMSUNG과 LG, POSCO란 영자로 표기되는 마당에 무슨 ‘세종학당’프로젝트로 한글사랑을 한다는 건지... 이거 바로잡지 않고는 한글에 윙크를 보낼 자격이 없습니다.



심지어 같은 문자를 쓰는 남북한끼리도 저렇게 말이 안 통해서,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서 ‘6자회담’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기막힌 실정인데 말입니다.



1년에 한번 10월 9일이 되면 꼭 한글을 생각하지만 다행히 1만원짜리 지폐를 통해서 그걸 만든 인자한 세종대왕을 매일처럼 만나고 있습니다. 따져보니 1965년도 옛 화폐 100원권 지폐부터 세종대왕의 신세를 졌더군요. 그 후 1973년도 1만원권을 거쳐 오늘날 신권에 이르기까지 무려 40년 이상을 세종은 대한민국 최 고액권 화폐의 공인된 최고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대왕의 마음이 무척 불편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동안 모델료 전혀 받지 않고 고액권의 모델로 많은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6월이면 그 위치를 5만원권의 신사임당에게 내주게 됐습니다. 정 5만원권이 필요하다면 세종에게 양해를 먼저 구하고 당연히 그 자리로 모시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규 발행될 5만원권에 들어갈 신사임당이 그만한 자격과 위치에 있느냐하는 문제는 발행 이후라도 논란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유구한 우리 한민족사에서 이율곡과 신사임당 모자를 5000원권과 5만원권에 같이 넣어야 할 만큼 과연 그만한 인재나 위인이 없었을까요?



이율곡을 모델로 한 5000원권도 그렇습니다. 비록 동시대를 살았던 위인일지라도 나이로 보나 경륜으로 보나 또 조선조 유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 봐도 단연코 퇴계 이황이 윗사람입니다. 해서 5000원권에 퇴계 선생이 들어가고, 율곡은 1000원권으로 물러앉았더라면 훨씬 도리에 맞고 모양새도 좋았겠지요. 물론 율곡의 뜻이 아니라고 할지언정 율곡의 후손들이라도 나서서 극구 양보를 했어야 할 자리였습니다.



다섯 장의 퇴계와 한 장의 율곡이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런 불합리한 지폐를 손에 들고도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별 문제의식 없이 사용해 왔던 ‘동방예의지국(?)’의 민족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최 고액권에는 상징적인 의미와 교육적인 의미가 함께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만 엔짜리와 장차 발행 될 한국의 5만원짜리를 미리 대비해보면 경제적인 위상 차이를 넘어서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나마 세종대왕은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말 우리글이라는 상징으로 민족정신을 지켰던 분인데 말입니다.



WBC 야구대회에서 일본을 이기는 것도 국가브랜드를 일시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됩니다만 지폐 한 장을 통해서라도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나라의 위상과 가치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겠지요. 정주영 현대 회장이 울산 앞바다에 조선소를 지을 돈을 빌리러 간 영국 은행에서 몇 푼 안 되는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들고도 500 년전에 거북선을 만든 민족의 후손이라고 얘기하던 그런 패기와 자신감 말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10만원권이 발행될 때면 국가브랜드가 경제규모에 맞는 10위권의 제자리로 진입해 있을 거란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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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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